최민성 (델코리얼티그룹 대표, 건설주택포럼 명예회장)

현대 도시 재생의 새로운 키워드로 ‘스포츠 앵커(Anchor·지역의 핵심 거점 시설)’가 주목받고 있다. 단순한 경기장이 아니라, 주변 개발과 결합된 복합 시설이 지역의 경제·문화·사회 중심으로 자리 잡는 사례가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미국 오하이오주 콜럼버스의 내셔널와이드 아레나는 그 대표적인 예다. 25년 전 개장한 이 아레나는 주변 약 40만㎡를 혼합용도 구역으로 탈바꿈시켰다. 자동차 주차장 중심의 고립형 시설이 아니라, 보행자 거리·공공광장·주거아파트·사무실·레스토랑 클러스터가 어우러진 24시간 활성화 공간으로 진화했다. 뉴욕타임스가 ‘미드웨스트 최고의 재개발 사례’로 꼽을 만큼, 이곳은 경기일 경제 효과를 넘어 연중 상업 활동을 유발하며 도시계획의 새로운 모델로 평가받는다.
이제 아레나 개발은 이벤트 중심이 아니다. 지역 도시계획을 선도하는 촉매제로서 녹지·상업·주거를 통합해 자립형 커뮤니티를 창출하고 있다.

◆ 해외의 변화: 경기장에서 ‘도시의 거실’로
미국 세인트루이스의 에너자이저 파크는 메이저리그 축구 경기장을 중심으로 공공녹지와 광장을 확장해 ‘티켓팅 구역’을 넘어선 소셜 허브로 기능한다. 경기장 주변에 산책로, 팝업스토어, 커뮤니티 공간을 배치해 팬들이 경기 전후 자연스럽게 머무르도록 설계했다.
플로리다 잭슨빌의 NFL 경기장 리모델링은 ‘공공 웰니스 루프’를 핵심으로 삼는다. 경기장 외벽을 따라 조성되는 녹지 순환 산책로에는 요가 클래스, 하이킹 트레일, 건강 클리닉, 농부시장 등이 더해진다. 경기가 없는 날에도 시민들이 이용할 수 있는 웰니스 중심지로 재정의한 것이다.
이와 같은 복합화는 아레나를 단순한 스포츠 시설에서 벗어나, 도시의 다목적 문화·산업 허브로 진화시키고 있다. 결과적으로 경기장 주변은 주민들의 일상적 커뮤니티 공간이자, 자동차 중심 도시에서 보행자 중심 도시로의 전환을 이끌고 있다.

◆ 한국의 적용: 상암동이 증명한 ‘도시 재생의 앵커’
서울 상암동 월드컵경기장은 2002년 월드컵을 계기로 난지도 매립지를 월드컵공원으로 재생하며 도시 재생의 상징으로 떠올랐다. 약 500만㎡ 규모의 생태공원은 한강 전망대, 공중보행로, 피크닉존을 더해 녹지 중심의 휴식 공간이 되었다.
경기장 내부에는 대형마트, 복합영화관, 쇼핑몰, 식당가, 스포츠센터가 입점해 경기 없는 날에도 하루 평균 1만5,000명이 방문한다. 또한 주변의 DMC(디지털미디어시티)로 확장되며 첨단 산업단지, 친환경 주거단지, 상업 복합몰이 조성됐다.
FC서울의 홈경기 때는 응원 문화가 지역의 정신적 중심을 형성하고, 평상시에는 방송사와 카페거리, 숙박시설이 북적이는 업무·상업 허브로 기능한다. ‘상암 새천년타운’으로 불리는 이 구역은 월드컵을 촉매로 서북부 신도시의 성장을 견인했고, 서울 균형발전 모델로 자리 잡았다.

◆ 시사점: 아레나는 도시의 미래를 설계
과거의 고립형 경기장은 주차장 바다 속에 묻혀 도시와 단절됐지만, 이제 아레나는 혼합용도와 공공 인프라를 통해 지역을 선도하는 '도시 앵커'로 부상했다. 콜럼버스나 상암동 사례처럼 주거·상업·산업·웰니스 시설을 통합할 경우 경제 파급 효과는 2~3배 확대되고, 주민 참여가 자연스럽게 유도된다.
한국의 오래된 경기장, 예컨대 잠실운동장과 부산 사직야구장 등도 이러한 모델을 적용할 때다. 정부와 지자체가 민간 투자와 연계해 보행자 중심의 마스터플랜을 수립한다면, 스포츠는 더 이상 이벤트가 아닌 지속 가능한 도시 재생의 엔진이 될 수 있다.
아레나가 속삭이는 미래는 이미 우리 곁에 있다. 이제 그 목소리를 듣고 실행할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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