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30일 주택공급추진본부를 신설한다. 서울과 수도권 주택공급 문제를 더는 미룰 수 없다는 판단 아래, 흩어져 있던 공급 기능을 한데 모으고 집행력을 강화하겠다는 의지를 공식화한 것이다. 이전보다 진일보한 조치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 지점에서 좀 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질 필요가 있다.
조직 개편의 칼을 뺀 김에, ‘대한민국 주택정책 패러다임’ 자체를 수술대에 올려보자는 것이다.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주택과 도시를 ‘부동산’이라는 단편적이고 후진적 울타리 안에 가둬두고 다뤄왔다. 이것이야말로 '선진국 대한민국 주택정책'이 안고 있는 '문제의 본질'이다.
이를 바꾸기 위한 행정 체계의 근본적 혁신 없이 ‘아파트 공급 조직’만 늘리는 것은 지극히 소극적인 개편에 불과하다. 반세기 넘게 지속돼 온 지금의 구조적 후진성을 이제는 타파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수도권 아파트 공급난이 일부 해소된다 해도 주택·도시 정책의 난맥상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

◆ ‘주택·도시 정책’, ‘부동산 울타리’에서 해방돼야
한국의 주택·도시 정책은 오랫동안 ‘부동산’이라는 경제적 범주에 갇혀있었다. 주택은 사람이 살아가는 공간이고, 도시는 사람들의 삶이 축적되는 무대다. 그러나 우리의 주택정책과 행정은 주택·도시를 가격·거래·자산·투자라는 단순한 잣대로만 재단해왔다. 행정적으로도, 개념적으로도 매우 후진적인 구조다.
이 프레임 속에서 한국의 주택정책 시야는 좁아질 수밖에 없었다. 국민 인식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무엇을 어떻게 짓느냐보다 얼마에 거래되느냐가 우선이고, 어떻게 거주하느냐보다 얼마나 오르느냐가 주택 가치 판단의 기준이 됐다. 주거문화와 주거복지, 도시와 건축을 삶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개념은 아예 자리 잡을 틈조차 없었다.

◆ ‘돈과 투자상품’으로만 평가되는 주거 인식
대한민국의 집은 거의 예외 없이 ‘가격’으로 평가된다. 좋은 집과 나쁜 집의 기준은 주거 공간의 개성과 품질이 아니라 오직 시세다. 동네의 맥락과 공간의 품격, 공동체와 어우러지는 주택 고유의 가치는 집값 앞에서 맥없이 사라진다.
집은 삶의 공간이기보다 투자 대상이 되었고, 도시는 공동체의 무대가 아니라 거대한 자산 덩어리로 인식된다. 주거문화와 주거복지라는 개념은 설 자리를 잃은 지 오래다. 주택 정책은 늘 ‘부동산 대책’으로 포장돼 취급돼 왔다. 이 같은 왜곡된 인식 구조는 주거 불안과 사회적 갈등을 반복적으로 증폭시킨다. 사람들은 비싼 집, 시세 차익이 기대되는 집에만 집착하게 되기 때문이다.

◆ 선진국 대부분은 ‘주택행정’을 별도 기관으로 운영
주택을 부동산을 넘어 삶의 기반으로 다루는 행정 체계는 해외에서는 이미 보편적이다. 미국은 연방정부 차원에서 주택정책을 총괄하는 주택도시개발부(HUD)를 운영하며, 주택 공급뿐 아니라 저소득층 주거 지원, 도시 재생, 공공주택 관리, 주거 차별 해소까지 포괄적으로 담당한다.
싱가포르는 주택개발청(HDB)을 통해 국민 주거의 상당 부분을 책임지고 있다. HDB는 단순한 건설 기관이 아니라 주거 안정과 도시 질서를 함께 설계하는 핵심 행정기관이다.
일본 역시 주거·도시 정책의 위상을 분리·강화하며 장기 전략을 운영해왔다. 이들 국가의 공통점은 주택을 부동산 정책의 하위 개념으로 다루지 않는다는 점이다.

◆ 대한민국, 후진적 ‘주택행정 프레임’은 이제 바꿔야
이번 주택공급추진본부 신설은 하나의 계기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여전히 주택과 도시를 부동산 범주에서만 바라본다면, 아파트 공급 속도를 아무리 높여도 문제의 본질은 달라지지 않는다. 주택청 설립 논의는 그동안 반복적으로 제기돼 왔지만, 행정조직 비대화 우려라는 논리 앞에서 번번이 무산됐다.
그러나 이제 이 논리는 설득력을 잃었다. 주거 불안과 집값 급등, 도시의 피로와 공동체 붕괴가 상시화된 상황에서 “조직을 늘릴 수 없다”는 이유로 주거 행정의 근본 개편을 미루는 것은 더 이상 책임 있는 선택이 아니다. 철 지난 논리로 오늘의 문제를 설명할 수는 없다.
주택청 설립은 조직 확대의 문제가 아니다. 주택과 도시를 ‘부동산 울타리’에서 해방시키는 제도적 결단이다. 주택청은 주택공급만 담당하는 기관이 아니라, 주거문화와 주거복지, 주택·도시 정책을 총괄하는 국가적 컨트롤타워가 돼야 한다.
주택공급추진본부 신설에 그치지 말고, 지금은 ‘주택청’을 만들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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