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만 운영되는, 세계 어디에도 없는 기형적 주택시장 통계 제도가 있다. 바로 ‘아파트값 주간 통계’다. 1986년 당시 주택은행(현 KB국민은행)이 대출 심사를 위해 매주 아파트 가격을 조사한 것이 출발점이었다. 이후 2000년대 초반 민간업체들이 주간 시세를 공개했고, 2008년에는 한국부동산원(옛 한국감정원)이 공식적으로 주간 단위 매매·전세가격 지수를 발표하면서 제도화됐다.

◆ 30여 년 지속해온 세계 유일 ‘주택시장 황당 통계’
이렇게 30여 년 가까이 이어진 제도는 주택시장과 정책 왜곡에 큰 기여를 해왔다. 신뢰는 이미 오래전에 무너졌다. 너무 오랫동안 무비판적으로 지속해온 탓에 이제는 폐지할 엄두도 못 내고 있다. 최근 들어서야 폐지 논의가 이뤄지는 분위기다.
이 통계의 황당한 결과는 무시로 벌어진다. 지난주에도 같은 시기, 같은 서울 아파트값을 두고 민간업체는 ‘하락’을, 공공기관은 ‘상승’을 발표했다. 단 하루 차이 발표인데 결과는 정반대였다. 이런 일이 반복돼도 언론은 이를 아무렇지 않게 받아쓴다. 시장 참여자들 역시 이 같은 매우 이상한 상황에 둔감해졌다.

◆ 호가 반영·기관별 기준 차이, 왜곡의 구조적 원인
왜 이런 황당한 결과가 반복될까. 첫째, 거래가 드문 부동산 시장에서 주간 단위 지수를 억지로 만들다 보니 표본이 부족하다.
둘째, 실거래가 아닌 중개업소 ‘호가’를 반영한다는 점이다. 호가는 매도인의 기대와 중개업소의 이해관계가 섞인 값일 뿐, 시장가격이 아니다. 동네 중개업소들은 지역 주민들의 이해관계와 맞닿아 있어 ‘아파트값 떨어졌다’는 말을 공개적으로 하기 어려운 구조다.
셋째, 조사 기간과 표본 구성도 기관마다 제각각이다. 한국부동산원은 화요일~월요일을 반영하고, 민간업체는 월요일~금요일을 취합한다. 표본 규모도 다르다. 이런 구조적 차이 때문에 같은 주간에도 서로 다른 값이 나오는 것이 오히려 자연스럽다. 그러나 이 지표들이 ‘서울 집값의 공식 흐름’처럼 소비되는 것이 큰 문제다.

◆ 고가주택 거래 몇 건이면 '서울 집값 시황' 간단히 뒤집어
서울 전체 아파트 시장에서 주간 거래량은 많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강남·용산 등 고가주택 몇 건이 평균을 뒤흔든다. 별도의 보정이나 통일된 기준 없이 반영하면 곧바로 하락장세의 서울 집값도 ‘상승세로’ 순식간에 둔갑한다.
이렇다 보니 최근 이재명 정부 들어 강력한 수요 규제 대책을 내놓은 탓에, 서울지역 대부분은 거래 급감과 하락세가 지속되고 있다. 그런데도 매주 나오는 주간 지표는 정반대로 나온다.
이 같은 시황 지표는 시장 분위기를 왜곡하고, 정부 정책 판단까지 오염시킨다. 침체 국면에서도 지표가 ‘상승’으로 나오면 불필요한 규제 강화로 이어질 수 있다.
그런데도 언론은 이를 경마 중계하듯 무책임하게 반복 보도하며 시장 혼란을 조장한다. 언론이 왜곡된 수치를 ‘공식 지표’처럼 확산시키는 것은 심각한 직무유기다. 더 큰 문제는 언론이 스스로 검증과 비판 기능을 포기한 채 단순 전달자로 전락했다는 점이다. 언론이 제 역할을 하지 않는 한, 왜곡된 통계는 계속해서 시장과 정책이 오도될 수밖에 없다.

◆ “거래 부족·지역 격차 큰 주택시장, 주간 지표 애초에 불가능”
아파트는 고가 자산이며 저빈도 거래 시장이다. 최근엔 토지거래허가 절차까지 더해져 계약 한 건 체결에도 수주가 걸린다.
이런 시장에서 ‘7일 단위 변동률’을 만드는 것은 정확성·대표성·통계적 타당성 모두에서 성립이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억지로 통계를 만들어 ‘0.01% 상승’, ‘–0.02% 하락’ 같은 미세 수치를 내놓고 버젓이 유통시키는 것은 위험하다. 많은 통계 전문가들은 한결같이 “아파트 주간 지표는 시장 흐름이 아니라 ‘단기 잡음’일 뿐”이라고 지적한다.

◆ 해외엔 없는 통계, 실거래 기반 월·분기 체계가 표준
미국의 케이스–실러(Case–Shiller) 지수는 실거래를 반영한 월간 지표이다. 주요 도시·전미 지수를 거래 기반 반복매매 방식으로 산출한다.
영국의 랜드 레지스트리 주택가격지수(UK HPI)는 영국 토지등기소(HM Land Registry)와 영국 통계청(ONS·Office for National Statistics)이 거래 신고 데이터를 결합해 매월 공표한다. 북아일랜드는 분기 공표를 병행한다.
일본 국토교통성 ‘부동산가격지수’ 역시 거래 신고를 반영한 월간 체계로 운영되며, 2015년부터 본격 운영됐다. 유럽연합(EU)은 유로스타트(Eurostat) 지침에 따라 거래가격 기반 HPI를 회원국이 월간 또는 분기 단위로 산출·공표한다.
공식 통계 체계에서 ‘주간 집값 지표’는 어느 나라에서도 운영되지 않는다. 독일 등 유럽 주요국도 동일하며, 민간 월간 지표(예: EPX)가 보조적으로 활용될 뿐 ‘주간 공식 지표’는 없다.

◆ 주간 단위 주택통계 조사·발표, 폐지 시급
정부 정책 효과는 수 주~수 개월 뒤에 나타난다. 실거래 반영이 지연되는 시장에서 주간 지표로 정책을 판단하는 것은 오류를 확대 재생하는 결과를 낳는다. 기관마다 기준도 달라 신뢰할 수 없다.
세계 어디에도 없는 비정상적 통계를 붙잡고 있는 한국 정부의 태도를 이해할 수 없다. 정부는 이제라도 즉시 폐지하고, 실거래 기반 월간·분기 체계로 통일해야 한다.
집값 동향이 주간 단위로 나오지 않는다고 해서 시장 참여자들이 불편을 겪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불필요한 잡음을 제거하고, 정책·시장 판단의 정확성을 높이는 길이다. ‘주간 통계 폐지’가 주택시장 신뢰 회복과 정책 판단 정상화에 첫걸음이 될 것이다.

#아파트 #집값 #서울 #아파트값주간통계 #부동산시장왜곡 #호가통계 #강남용산고가거래 #언론책임 #주택시장혼란 #케이스실러 #유로스타트 #주간통계폐지 #정책판단오류 #하우징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