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기반 부동산 자동가치산정(AVM)'은 사람 중심의 평가 방식이 지닌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도입 논의가 본격화된 기술이다. 정부가 AVM 도입을 검토하는 과정에서 관련 업계는 '표준 설정'이 자신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다. '표준 설정'은 AVM이 어떤 방식으로 집값을 계산할지를 정하는 절차이다. 이 과정에서 활용되는 ‘기술 기준’은 AVM이 사용하는 부동산의 데이터 범위 및 가중치, 알고리즘 구조, 오류 보정 방식 등을 아우르는 기술적 설계 규칙을 의미한다.
쉽게 말하면 AVM이 집값을 계산하기 위해 다양한 부동산 데이터를 어떻게 수집하고 가공해 계산식에 반영할지 정해놓은 프로그램적 구조이다. AVM 도입과정에서 '표준'이 잘못 설정될 경우 특정 업계의 이해관계가 개입될 가능성이 있어, 기술 경쟁보다 '절차의 공정성과 독립성이 우선돼야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 AVM 도입의 배경…사람 중심 평가 방식의 한계
최근 몇 년간 집값 평가가 기관마다 다르게 나타나고, 동일 단지조차 서로 다른 가격이 제시되는 사례가 반복되었다. 이는 지금까지의 부동산 가치평가가 감정평가사나 기관 담당자의 경험과 판단에 크게 의존해온 구조 때문이라는 분석이 있다. 입지 조건, 거래 흐름, 노후도, 금융 변수 등 수백 개 요인을 일관된 기준으로 반영해야 하는 부동산평가시장에서 '인적 평가 방식의 한계'가 뚜렷하게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AVM은 이러한 구조적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등장한 개념이다. 방대한 거래 정보와 주변 시세, 지역·물건 특성을 통계 기반으로 분석해 집값을 자동 계산하는 방식으로, 미국·유럽에서는 공시가격 산정이나 대출 심사에 활용되고 있다. 한국도 필요성이 커지고 있고, 관련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이 과정에서 대부분 전문가들은 "AVM의 성패는 기술의 정교함보다 표준을 누가, 어떤 절차로 설계하느냐가 결정한다"는 점을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 관련 업계는 ‘표준 설정’에 예민한 관심
국내에서는 감정평가업계, 가격 플랫폼업계, AVM 테크기업이 각각의 기술을 제시하며 경쟁하는 모양새다. 겉으로는 기술 경쟁처럼 보이나, 실질적으로는 정부가 어떤 모델을 표준으로 인정할지에 따라 시장 질서가 달라지기 때문에 업계의 관심은 '표준 선점'에 맞춰지고 있다.
감정평가사협회는 자체 AVM을 개발해 정책에 반영하려 하고 있다. 그러나 협회는 법적으로 감정평가사의 지도·감독 기능을 수행하는 기관으로 규정돼 있어, 감독기관이 시장 서비스 제공자 역할까지 수행할 경우 '이해상충 논란'이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KB·한국부동산원 등 기존 시세 플랫폼도 AVM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최근 관련 세미나들도 부쩍 늘고 있다. 이런 세미나 등에서는 특정 기관의 AVM을 긍정적으로 부각시시키는 등 업계 간 물밑 경쟁도 벌어지고 있다. 이와 별도로 AI 기반 AVM을 개발하는 테크기업들은 데이터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독립적으로 운영하는 구조를 강점으로 내세우며, 기존 평가 방식과의 차별성을 강조한다.
여기에 금융기관의 자체 평가 문제도 얽혀 있다. KB국민은행은 내부 조직에서 담보평가를 직접 수행해왔다. 이에 대해 감정평가사협회는 최근 법령 위반 소지가 있다는 문제를 제기했다. 금융기관이 대출 심사와 시세 산정을 동시에 수행하는 구조는 AVM 도입 시점에서 또 다른 이해상충 논란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결국 업계의 관심은 관련 기술보다 “정부가 어떤 기준으로 표준을 결정할 것인가”에 집중된다. 표준은 한 번 채택되면 향후 10년 이상 시장 질서를 좌우하게 될 수 있어서다.
◆ 선진국들도 ‘기준의 공정성’과 ‘이해상충 방지’에 초점
AVM 논의에서 알고리즘의 정교함이나 데이터의 정밀도 같은 기술적 요소가 강조되지만, 절차가 공정하지 않으면 어떤 기술도 신뢰를 얻기 어렵다. 특정 업계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표준이 설계될 경우 AVM은 기존 평가체계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왜곡을 낳을 수 있기때문이다.
미국은 '2024년 AVM 품질관리 기준을 제정'하며 '이해상충 방지를 최우선 원칙'으로 규정했다. 집값을 산정하는 기관이 대출 판단이나 시장 정보 제공 기능을 동시에 수행하지 못하도록 제한한 것이다. 또 데이터 조작 방지, 무작위 표본 검증, 차별 금지 등 공정성 확보를 위한 조항을 포함했다.
유럽 역시 도입 초기 단계지만 절차의 공정성, 데이터 투명성, 독립적 검증 체계를 중심으로 제도를 정비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선진국들이 표준을 논의할 때 기술보다 절차의 공정성을 먼저 세우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 지금이 ‘골든타임’…공정성 중심 표준 마련해야
한국은 AVM 도입 초기 단계이기 때문에, 선진국들의 시행착오를 참고해 더 공정하고 투명한 표준을 마련할 수 있는 시기이다. 기술적 기준에 집중하기보다 절차의 정당성과 독립성을 우선하는 제도 설계가 필요하다.
감정평가 감독기관과 시장 플레이어의 역할은 명확히 분리돼야 한다. 또한 민간·학계·정부가 함께 참여하는 독립적 품질관리기구를 설립해 표준과 기술의 성능을 검증할 필요가 있다. 데이터 투명성 확보, 오류 검증 절차 마련, 이해상충 방지 구조는 AVM 도입의 필수 조건이다.
공정성이 우선된 표준이 마련된다면 AVM은 한국 평가체계를 선진화하는 기회가 될 수 있다. 반대로 공정하지 않은 표준은 기존의 혼란에 새로운 위험을 더할 수 있다.
AVM의 성공 여부는 기술이 아니라 공정성에 달려 있다. 지금의 선택이 미래 한국부동산가치평가 체계를 좌우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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