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우징포스트 칼럼니스트=임동준 자이랜드 대표]
이재명 대통령은 15일 국무회의에서 “부동산으로 재산을 늘리는 시대는 끝났다”며 “정보 왜곡과 시세 조작은 시장 교란 행위”라고 지적했다. 수도권 안정화 대책과 함께 나온 이 발언은, 시장의 신뢰가 얼마나 취약한지를 드러낸 것이다.
◆ 정책의 역설과 신뢰의 붕괴
지난 10여 년간 정부는 집값 안정을 목표로 수십 차례의 규제를 시행했다. 주택담보인정비율(LTV) 강화,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 다주택자 중과세 등이 핵심 억제책이었다. 그러나 거래가 급감하고, 실수요자 시장 진입 장애 유발, 매도자들의 매물 유보에 따른 ‘락인(lock-in·매물잠김) 심화’ 등의 부작용도 수반됐다. 낮은 보유세와 높은 거래세 구조도 시장 왜곡의 한 축이 되고 있다. 거래 유동성을 떨어뜨리는 요인이 되고 있어서다. 정책의 방향은 옳았지만, 결과는 시장 불신이었다.
◆ 감정평가·시세·통계의 불일치가 만든 불신
주택금융의 근간은 ‘정확한 가치 평가’이다. 그러나 현행 시스템은 감정평가, 시세, 통계가 서로 맞물리지 않는다. 감정평가의 불안정성은 전세보증 심사에서 가장 두드러진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에 따르면 단독주택의 사전평가 취소율은 약 70%, 빌라는 64.8%에 이른다. 감정가가 실거래가보다 과도하게 낮게 산정돼 평가가 무산되는 사례가 빈번하다. 그 결과 수조 원 규모의 전세보증금이 과소담보 상태로 방치된다.
시세 정보도 객관적이지 않다. 금융기관이 사용하는 KB·부동산원 시세는 대부분 '호가(asking price)'를 기반으로 한다. 호가는 많은 문제를 야기한다. 호가를 불러주는 사람의 주관적 경향성이 강하게 개입될 수 있어서다. 하지만 은행들은 이를 담보평가의 기준으로 대출 목표를 결정하는 바람에, 해당 부동산 가격과 대출액 판단의 객관성이 현격히 떨어지는 문제를 야기시킨다.
통계 신뢰성도 문제다. 부동산원의 주간 통계는 실제 시장 흐름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국정감사에서도 국토교통부 장관이 개선 필요성을 인정했다. 이 같은 불일치는 “내 집값이 왜 이렇게 다르게 평가되는가”라는 근본적 불신을 심화시킨다. 같은 공동주택(아파트·연립·다세대 등)이라도 은행, 평가사, 공공기관마다 산정 결과가 달라 국민은 대출 한도와 보증금 평가에서 엄청난 불이익을 받는다.
◆ AVM, 왜곡을 넘어 ‘공정 평가’의 기술로
이재명 대통령은 AI의 부정적 활용을 경계했다. 하지만 동시에 AI가 시장의 신뢰를 회복시키는 도구가 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자동가치산정시스템(AVM·Automated Valuation Model)은 인공지능 알고리즘으로 부동산 가치를 자동 산정하는 기술이다. 최근 전문가들이 내놓은 연구(구강모·임동준,2024) 자료에 따르면, 국내 AVM의 지역별 오차율은 6~13% 수준으로 기존 감정평가보다 예측 정확도가 높았다. 같은 거래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한쪽 모델은 거래가격과 거의 일치한 비율이 87.6%로, 다른 쪽(78%)보다 약 10%포인트 높았다.
AVM이 제도화되면 다음과 같은 변화가 가능하다. 첫째, 은행마다 달랐던 담보평가가 표준화돼 지역별 대출 불공정이 줄어든다. 둘째, 전세보증 심사가 자동화돼 깡통전세 위험을 조기에 감지할 수 있다. 셋째, LH·SH의 매입임대 가격이 투명해져 세금 낭비가 줄어든다. 즉 AVM은 기술의 진보가 아니라 공정성의 회복이다. AI는 시장을 왜곡하는 것이 아니라, 평가를 바로잡는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 “독립형 AVM이 신뢰 회복 출발점”
이재명 정부의 정책 기조는 ‘공공성 강화’와 ‘국민 자산의 합리적 보호’이다. AVM 제도화는 이러한 방향성과 완전히 일치한다. AI 기반 시세 서비스가 이미 민간 플랫폼을 중심으로 확산되는 만큼, 정부가 제도화에 나서지 않으면 주택시장의 시세 왜곡은 더 커질 수 있다. 신뢰할 수 있는 공적 AVM 체계는 시장 혼란을 막는 최후의 장치이자,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공정한 부동산 평가’의 출발점이다.
자이랜드는 지난달 26일 국회 정책 간담회에서 이러한 문제의식을 공유하며, 이해상충이 없는 독립형 AVM의 제도 도입을 제안했다.
해외에서도 같은 변화가 나타난다. 미국 정부후원기관(GSE) 프레디맥(Freddie Mac)은 지난 2005년부터 자체 '부동산 가치평가 시스템(Home Value Explorer)'를 운영했다. 하지만 이해상충 방지를 위한 새 AVM 기준(2025년 10월 1일 시행)에 따라 같은 해 7월 31일부로 외부 제공을 중단했다.
이제 우리나라도 공정성을 넘어 독립성과 소비자보호를 제도적으로 보장해야 한다. 국민이 신뢰할 수 있는 평가체계가 구축될 때, 주택시장은 진정한 안정에 다가설 것이다.
‘부동산 폭탄 돌리기’를 끝내려면 부동산평가방법부터 바로잡아야 한다. 정부는 더 이상 AVM 도입을 미뤄서는 안 된다. 공정하고 독립적인 평가가 제도 속에 자리 잡을 때, 시장은 비로소 신뢰를 되찾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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