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임대주택의 노후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1990년대 대량 공급된 물량이 30년 이상 경과하면서 5년 만에 노후 주택은 11배로 늘었지만, 관리·정비 예산은 절반 이하로 줄었다.
정부는 여전히 ‘예산 부족 타령’을 하며 소극적 태도를 이어가고 있다. 그러나 주거복지 선진국들의 실태와 비교하면 우리 정부의 대안 부재는 심각한 수준이다. 국가가 공급·관리하는 공공임대주택은 단순한 주거가 아니다. 국가와 사회의 중대한 안전망이다. 더 늦기 전에 국가적 전략을 세워야 한다.
◆ 노후 공공주택 급증, 정비예산은 급감
안태준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자료에 따르면, 2021년 연식 30년 이상 공공임대는 1만1,906호에서 올해 7월 기준 13만7,891호로 11배 늘었다. 1990년대 대규모로 지어진 임대아파트가 한꺼번에 수명을 다하면서 특정 지역 단지를 중심으로 노후화가 집중되고 있다.
일부 단지에서는 배수관 부식으로 인한 반복적 누수, 보일러와 난방 고장, 승강기 잦은 고장, 벽체 균열과 곰팡이 등 생활 불편이 만성화돼 있다. 고령자·저소득층 거주 비중이 높아 ‘스스로 수리할 여력조차 없는 주거 빈곤화’로 이어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그럼에도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정비 예산은 2022년 4,054억 원에서 올해 1,789억 원으로 56% 급감했다. 입주민 민원은 늘어나는데도 공용 설비 교체나 대규모 리모델링은 사실상 중단된 상태다. 전문가들은 “정비를 늦출수록 노후 단지 전체가 슬럼화하는 악순환에 빠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 ‘예산 부족 타령’, 멈추고 국가대책 세워야
정부는 정비 확대 불가의 이유로 ‘재정 여건’을 강조해 왔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예산 부족이 아니라, 정책 우선순위 부재가 문제”라고 지적한다.
실제로 SOC 사업이나 교통망 확충 예산은 매년 증액됐다. 국내 SOC는 이미 포화 상태라는 평가를 받는다. 이 예산의 일부라도 공공임대 정비에 전환해야 한다. 이같은 우선 배정 의식이 없는 것이 더 큰 문제다.
노후 공공임대 개선을 지금처럼 미루면 장기적으로는 긴급 보수 비용, 안전사고 피해 보상, 지역 공동체 붕괴에 따른 사회적 비용이 훨씬 커질 수 있다. 주거복지 전문가들은 “지금처럼 소극적으로 대응하면 수년 내 관리 불능 상태의 공공임대 단지가 속출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 주거복지 선진국들은 어떻게 관리하나
대부분의 주거복지 선진국들은 노후 공공주택을 단기 보수가 아닌 국가 전략 차원에서 다룬다. 영국은 2006년 ‘디센트 홈즈 스탠다드’를 도입해 지방정부가 매년 점검·수리 계획을 수립하도록 의무화했고, 기본 주거 품질을 꾸준히 개선했다.
싱가포르는 2007년 ‘홈 임프루브먼트 프로그램(HIP)’을 통해 30년 이상 된 HDB(공공주택) 단지를 개보수하고, 주민 투표를 거쳐 정부 지원과 입주민 부담을 병행하는 구조를 마련했다.
독일은 공공개발은행 KfW를 통해 매년 전체 건축물의 약 2%를 에너지 효율 리모델링 하도록 지원한다. 노르웨이는 ‘에노바’ 보조금으로 개보수 비용의 최대 25%를 환급한다.
프랑스는 ‘소셜 믹스’ 정책으로 사회주택 비율을 의무화하고, 다양한 계층이 함께 거주하는 도시재생을 추진한다. OECD 역시 회원국의 3분의 2 이상이 국가 주거 전략을 수립해 주택 접근성, 품질 개선, 공급 확대라는 3대 목표를 동시에 추진하고 있다.
이처럼 주거복지 선진국들은 안전 기준 강화, 재원 다변화, 주민 참여 확대를 통해 노후 공공주택 문제를 제도적으로 관리하고 있다. ‘예산 부족 타령’을 반복하는 한국의 현실과 뚜렷이 대비된다.
◆ "더 이상 미루면, 종국엔 국가적 재앙 될 것"
정부는 이제 ‘예산 부족’ 변명을 멈춰야 한다. 예산 타령을 방패 삼아 지속하고 있는 '임시방편'을 중단해야한다. 노후 공공주택 개선은 단발적 보수가 아니라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국가 과제가 돼야한다.
한국은 이제 ‘K-주거복지’의 정체성을 분명히 세울 때다. 공공임대가 사회안전망으로서 제 기능을 다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더 늦추면 노후 공공임대 단지는 극심한 슬럼화에 빠진다. 안전사고와 사회적 비용 폭증, 주거 불평등 심화로 번질 수 있다. 더 늦기 전에 정부가 책임 있게 결단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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