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500명 안팎의 노동자가 산업현장에서 목숨을 잃는다. 2024년만 해도 산재 사망자는 589명, 그 중 절반 가까운 276명이 건설업 종사자였다. 근로자 1만 명당 산재 사망률은 0.98명으로 20년 전(2.55명)보다 줄었지만, 여전히 OECD 최상위권이라는 불명예를 벗어나지 못했다. 유럽 주요국이 10만 명당 1명대의 사망률을 기록하는 것과 비교하면, 우리 현실은 몇 배나 높은 수준이다. 특히 사망자의 52.8%가 60세 이상 고령자라는 점은 산업재해가 취약계층에 집중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정부와 업계의 대책은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다. 지난 14일 고용노동부 장관과 20대 건설사 CEO 간담회에서도 “건설산업 안전센터 설립”과 “근로자 계도 강화”가 논의의 중심이었다. 현장의 흡연·이어폰 착용 같은 위험 행위를 막기 위한 규정, 안전모 지급 확대나 작업 열외권 제도 같은 자구책도 나왔다. 하지만 이는 본질적으로 노동자 개인의 습관을 고치는 수준에 머무른다. 수십 년간 반복된 ‘교육 강화 → 규정 강화 → 처벌 강화’의 도식적 접근으로는 사고의 악순환을 끊을 수 없다는 사실은 통계가 이미 증명하고 있다.
산업재해가 남기는 사회적 비용도 막대하다. 산재보험 지출과 치료비, 생산성 손실 등을 포함하면 매년 수조 원대의 손실이 발생한다. 반복되는 산재는 건설사의 이미지와 신뢰도를 갉아먹고, 해외 프로젝트 수주 경쟁에서도 ‘안전 후진국’이라는 불이익으로 이어진다. 더 이상 미봉책으로 버틸 수 없는 이유다.
세계는 이미 다른 길을 가고 있다. 미국의 건설사 쇼무트는 기상 데이터, 작업자 GPS, 인원 밀집도를 AI로 분석해 3만 명 근로자의 사고 가능성을 예측·경고한다. 서울시도 AI CCTV로 안전모 미착용, 중장비 접근을 실시간 감지하는 시스템을 시범 운영했다. 삼성물산 등은 드론과 라이다(LiDAR)를 활용해 추락·충돌 위험을 사전에 탐지하고 있다. 안전교육이 아니라 ‘예측과 차단’이 글로벌 표준으로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우리도 답은 명확하다. 정부 부처는 이미 방대한 데이터를 보유하고 있다. 국토부의 건설현장 관리자료, 산업부의 공정·설비 데이터, 고용부의 산재 통계, 복지부의 보건·재활 데이터까지. 그러나 이 정보들은 흩어져 있을 뿐, AI가 학습해 위험을 미리 감지·경고하는 국가 차원의 통합 시스템은 존재하지 않는다. 지금처럼 “교육센터”만 양산한다면, 수십 년째 이어진 사고 악순환은 결코 끊어지지 않는다.
따라서 이제 필요한 것은 ‘건설안전교육센터’가 아니라, AI 건설산업안전연구소다. 이 연구소는 ▲부처별 데이터를 통합·분석하고 ▲AI가 위험을 예측·경고하며 ▲현장에 실시간 알림을 제공하는 컨트롤타워가 되어야 한다. 교육과 규정을 넘어, 시스템으로 사고를 원천 차단하는 패러다임 전환이 절실하다.
산업재해는 더 이상 개인의 ‘부주의’ 탓으로 돌릴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매년 500명 가까운 목숨이 스러지는 현실 앞에서 교육과 처벌만 반복하는 것은 직무유기에 가깝다. AI 건설산업안전연구소 설립은 더 미룰 수 없는 국가 과제다. 정부가 결단하지 않는다면 내년에도 우리는 같은 숫자를 애도하며, 똑같은 논쟁을 반복할 뿐이다. 지금이 결단의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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