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우징포스트 칼럼니스트=임동준 자이랜드 대표]

부동산 시장에서 AI 기반 시세예측시스템(AVM)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클릭 한 번으로 아파트 가격을 확인할 수 있는 편리함 덕분에 소비자·중개인·금융기관까지 널리 활용되고 있다.
그러나 정확도·검증 방식·표본 수 등 핵심 정보를 공개하지 않는 플랫폼이 많아 신뢰성 논란이 커지고 있다. 시장에 미치는 영향력이 커지는 만큼, 투명성과 책임 있는 관리 체계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AI 시세예측' 확산..."정확·신뢰성 문제도 확산"
AI 시세예측 서비스가 빠르게 확산된 배경에는 몇 가지 요인이 있다. 부동산 거래의 투명성 강화 요구가 커지고, 공공데이터 개방과 AI 기술 발전이 맞물리면서 시세 산정 자동화가 손쉬워졌다. 금융기관은 대출 심사와 자산관리 목적으로 AVM을 활용하고, 소비자들은 클릭 한 번으로 가격 정보를 얻는 편리함에 주목했다.
하지만 그 편리함 뒤에는 정확성과 신뢰성을 보장할 장치가 부족하다는 구조적 문제가 자리한다. '단순 참고용'이라는 문구만 남아 있는 시세 데이터는, 실제 거래 현장에서는 '공식 시세'처럼 받아들여지는 역설적 상황을 만들어내고 있다.

◆면책 조항 뒤에 숨은 AI 시세의 부작용
시중의 '부동산 정보 플랫폼 업체'들의 시세 화면 하단에 “본 시세는 참고용입니다”라는 문구를 넣어서 '법적 책임'을 피한다. 그러나 실제 거래 현장에서는 이 숫자가 가격 협상의 기준점이 되기도한다. 거래 수요자들의 매수·매도 심리에 직접적 영향을 미친다. 한 거래에서는 매수자가 플랫폼 시세를 절대적 기준으로 삼아 가격 조정을 거부했고, 결국 계약이 무산되었다.
이처럼 알고리즘 정확성 여부와 상관없이 플랫폼이 던진 숫자가 시장 판단을 좌우하는 이른바 '앵커링 효과(Anchoring Effect)'가 발생한다. 앵커링 효과는 처음 제시된 숫자가 기준점으로 작동해 이후 판단과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인지 편향을 의미한다.
최근 일부 소비자들은 시세가 실제 실거래와 1억 원 이상 차이가 난다거나, 단지 정보(난방방식·평면도)가 잘못 기재돼 있다는 불만을 제기하기도 했다. 잘못된 시세는 시장 혼란과 불신을 키울 수 있다는 경고다.

◆해외는 ‘공개·검증’, 우리는 ‘비공개’
해외 사례는 국내와 큰 차이를 보인다. 미국 부동산 플랫폼 질로우(Zillow)는 자체 AVM(제스티메이트·Zestimate)의 평균 오차율(매물 기준 1.94%, 비시장 매물 7.06%)을 공개해서 누구나 이를 확인할 수 있게 한다.
영국은 민관이 공동으로 운영하는 AVM 인증제도를 두고, 성능 지표와 테스트 결과를 의무적으로 공개한다. 싱가포르 역시 부동산 규제당국이 정확도 지표와 표본 규모 공개를 권고해 소비자가 신뢰 여부를 스스로 판단할 수 있도록 돕는다.
국내에서도 일부 기업은 자체 AVM의 정확도 지표와 연구 결과를 공개하며 투명성을 확보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러나 전반적으로는 정확도·검증 방식·표본 규모를 대부분 비공개로 두고 있어 소비자가 시세를 비판적으로 검증하기 어렵다. 결국 정보 비대칭성으로 인한 거래 왜곡 가능성이 국내에서는 더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정책 가이드라인과 외부 검증 체계 마련 시급
'AI 부동산 시세예측'이 시장에 안정적으로 자리잡으려면 기업의 자율적인 투명성 확보와 함께 정부 차원의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
기업은 알고리즘 산정 방식, 정확도 지표, 지역·가격대별 성능 등 핵심 데이터를 공개해야 한다. 정부는 ▲정확도 공개 의무화 ▲외부 검증기관 지정 ▲소비자 피해 구제 절차 마련 등 체계적인 관리 방안을 제도화해야 한다. 금융기관과 중개업계 역시 AVM 데이터를 활용할 때 신뢰 기준을 충족하는 플랫폼을 선별하고 내부 관리 체계를 갖출 필요가 있다.
'소비자가 질문할 권리와 기업이 설명할 책임'이 함께 작동할 때, AI 시세예측은 시장 신뢰를 높이고 거래 투명성을 강화할 수 있다. 기술의 공정성과 신뢰 확보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AI시세 #부동산플랫폼 #AVM #투명성 #정책과제 #하우징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