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우징포스트 칼럼니스트=임동준 자이랜드 대표]

내년 1월부터 시행되는 인공지능 기본법은 금융업계와 공공기관이 활용하는 '부동산 자동평가시스템(AVM)'을 법적 심사대에 올려놓는다. 그동안 단순 기술로 여겨지던 'AVM'은 이제 '신용결정의 책임 주체'로 재조명된다.
특히 주택담보대출처럼 국민 실생활과 밀접한 분야에서 AVM은 ‘고위험군 인공지능’으로 분류돼됐다. 이에따라 설명 가능성과 투명성, 감사 이력 관리 등 한층 엄격한 요건을 요구받게 된다. 기술의 정교함뿐 아니라, 누구나 이해할 수 있도록 작동 원리를 설명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추는 것이 필수 요건으로 떠오르고 있다.

◆AI 시대, 법의 시험대에 오른 AVM
'AVM(자동가치산정시스템)'은 인공지능 알고리즘을 통해 주택이나 부동산의 가치를 자동 산정하는 기술이다. 최근에는 비대면 대출이 확산되면서 시중은행과 핀테크 기업들이 이 시스템을 주택담보대출 실무에 본격 도입하고 있다.
금융 인프라로서의 위치는 높아졌지만, 단순한 정확도 중심의 기술 평가를 넘어서 결과 산출 과정을 사용자에게 설명할 수 있는지 여부가 새로운 기준으로 부상하고 있다.
인공지능 기본법 시행 이후 AVM은 단순한 예측 도구가 아닌, 고위험 AI 시스템으로 법적 지위를 갖게 된다. 이에 따라 금융업계와 공공기관들은 해당 시스템이 단순히 ‘정확한 결과’를 제공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설명 가능성, 오류 대응력, 감사 추적성, 차별 방지 구조 등 다양한 리스크 관리 기준을 충족하고 있는지를 입증해야 한다.
그러나 국내에서 실제 활용 중인 AVM 중 상당수는 이러한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고 있다. 일부 시스템은 단일 숫자만을 결과로 제시하며, 산출 근거가 되는 알고리즘 구조나 데이터 구성은 공개하지 않는다. 또 지역별 성능 편차나 오류율이 투명하게 관리되지 않아, 금융기관이 리스크를 인지하지 못한 채 시스템에 의존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강화되고 있는 제도·기준…추세 못 따르는 'AI 시스템'
모델 검증, 시스템 문서화, 외부 감사를 위한 이력 관리 등의 기반이 미비한 상황에서 '규정을 지키고 있다'는 선언만으로는 시장의 신뢰를 확보하기 어렵다. 이는 단순한 준법 문제를 넘어, 금융 시스템 전반의 구조적 리스크로 확산될 수 있다.
해외에서는 이미 AVM에 대한 규제 체계가 본격화되고 있다. 미국은 2024년부터 AVM 품질관리 기준을 마련해 ▲신뢰도 확보 ▲데이터 조작 방지 ▲이해상충 회피 ▲무작위 검증 ▲차별금지 준수 등을 의무화했다.
유럽연합(EU) 역시 유럽평가자협회(EAA) 표준을 통해 AVM의 최소 요건과 테스트 기준을 구체화하며, 설명 가능성, 외부 감사 가능성, 성능 보고 체계를 제도화했다.
반면 한국은 아직 전문가 중심의 논의에 머물러 있다. 실무자나 소비자들은 자신이 활용 중인 AVM의 수준이나 리스크를 정확히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기술은 빠르게 도입됐지만, 이를 관리·감독할 법적·제도적 기반은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AVM, 신뢰 제고 위한 기본 조건 확보 시급
이제 금융기관은 자사가 사용하는 AVM이 다음과 같은 기준을 충족하고 있는지 면밀히 점검해야 한다. 첫째, 시스템이 결과를 사용자에게 설명 가능한 방식으로 제시할 수 있는지 ▲ 둘째, 지역·유형별 오류율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있는지 ▲ 셋째, 문제가 발생했을 때 소급 가능한 감사 이력을 확보하고 있는지 ▲ 넷째, 이상값(outlier)을 식별하고 자동으로 조정할 수 있는 통제 체계를 갖추고 있는지 여부다.
AVM은 더 이상 단순한 알고리즘이 아니다. 예측 정확도만으로는 금융 신뢰를 담보할 수 없다. 사회적으로 수용 가능한 설명력, 투명성, 책임성이 갖춰져야만 비로소 공공성과 금융 안전성을 함께 보장할 수 있다.
기술은 계속 진화하겠지만, 그 기술이 어떤 책임 구조 속에서 운영되는지에 대한 기준은 사회적 합의와 제도적 감시를 통해 정립돼야한다.
필자는 AVM 시스템을 실무에서 직접 설계·운영해 온 경험을 바탕으로, 설명 가능성과 리스크 대응력, 감사 이력 관리 등 신뢰 기반 요소를 내재화하기 위한 시스템 고도화를 지속해왔다. 최근에는 건축허가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신축주택 대상 AVM을 개발하고 있다. 이는 기존 시스템이 간과해온 시장의 사각지대를 보완하려는 시도로 평가된다.
오는 23일, 한국지능정보시스템학회와 한국데이터전략학회가 공동 개최하는 '2025 춘계 학술대회'에서 필자는 'AVM의 기술적 진화 방향'과 함께 '인공지능 기본법 시행에 대비한 금융기관의 보안·리스크 대응 전략'에 대한 내용을 발표하고, 전문가들과 논의해볼 예정이다.
인공지능 시대의 ‘준법’은 더 이상 '단순한 체크리스트를 채우는 절차'에만 그치지 않는다. 이제는 거버넌스와 투명성, 책임성이라는 본질적 기준이 AI 시스템 전반에 요구되고 있다. AVM 역시 그 범주에서 예외가 아니다. 그 시험대를 통과한 시스템만이 시장 수요자들에게 인정을 받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