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우징포스트=박영신 대기자]
한국토지주택공사(LH)와 서울주택도시공사(SH)는 해마다 수만 가구의 '매입임대주택'을 사들이고 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부실 매입 논란이 반복되고 있다. 매입가격의 적정성, 주택 상태, 입지 조건 등에 대한 검증 부족으로 연례행사처럼 '공공예산 낭비 우려'가 지적된다. 문제 핵심은 자산평가 방식이다.
현재 두 기관은 감정평가사 2인의 평가액 평균을 매입가로 활용하고 있다. 하지만 평가자의 주관 개입 가능성과 가격 산정 기준의 불일치로 인해 시장성과 신뢰성이 부족하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이러한 한계를 보완하기 위한 대안으로 '자동가치산정모형(Automated Valuation Model, AVM)'이 주목받고 있다. AVM은 실거래가, 입지, 건축 연도, 면적 등 다양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가격을 자동 산정하는 시스템으로, 객관성과 신속성, 일관성을 높일 수 있는 기술로 평가된다.
감정평가와 AVM의 차이점(그래픽=하우징포스트 디자인팀)
◆감정평가 중심 구조, 반복되는 부실 논란
감정평가는 국가 공인 전문가가 부동산의 가치를 판단하는 제도로, 공공기관 주택 매입의 필수 절차로 자리잡아 왔다. 하지만 공공기관이 직접 평가를 의뢰하고 비용을 지급하는 구조는 객관성 확보에 한계를 드러낸다.
두 감정평가서의 평균을 그대로 매입가로 삼는 방식도 문제다. 적정 가격을 담보하기보다, 결과의 책임을 회피하는 수단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이로 인해 고가 매입이나 불량 주택 매입 등 문제가 반복되고 있으며, 국정감사와 감사원 감사에서도 지속적으로 지적되고 있다.
◆미국·영국·캐나다 등은 AVM 본격 활용
선진국 공공기관은 AVM을 자산평가에 본격 활용하고 있다.
미국은 주택도시개발부(HUD)와 정부지원기업(GSE)인 패니메이(Fannie Mae), 프레디맥(Freddie Mac)이 AVM을 자체 개발해 사용 중이다. 프레디맥의 ‘홈밸류익스플로러(Home Value Explorer, HVE)’는 감정평가 없이도 자동 산정가를 인정하는 사례로 주목받고 있다.
영국의 평가청(Valuation Office Agency, VOA)은 공공자산 과세와 주택 조사에 AVM을 적용하고 있으며, 지방세 과세 기준이나 Right to Buy 제도에서도 적극 활용하고 있다.
캐나다에서는 모기지주택공사(CMHC)가 ‘에밀리(emili)’ 시스템을 통해 모기지 보험 심사를 자동화하고 있으며, 온타리오주의 MPAC도 AVM을 기반으로 공공부문 부동산 가치를 산정하고 있다. 이들 기관은 AVM을 평가 자동화의 핵심 도구이자, 자산 운용의 정책 기반으로 활용하고 있다.
주요 선진국 공공주택기관 AVM 활용 현황(그래픽=하우징포스트 디자인팀)
◆한국형 AVM, 감정평가와 병행이 현실적 해법
AVM은 감정평가를 대체하는 방식보다, 보완하고 병행하는 접근이 현실적이다. 예를 들어 감정평가 결과와 AVM 추정값을 비교해 가격의 정합성을 검토하거나, AVM을 통해 매입 후보 물건을 사전에 검토할 수 있다.
공공기관이 보유한 임대주택 자산의 가치 추정, 리스크 관리, 매각 시기 판단 등에도 AVM은 유용하게 적용 가능하다. 이를 위해서는 데이터 표준화, 알고리즘 검증 체계, 법제도 정비 등의 제도적 기반이 마련돼야 한다.
◆예산 절감, 평가 신속성, 국민 신뢰 회복 기대
AVM은 평가 시간과 비용을 줄이고, 객관적 기준에 따라 평가 결과를 제시할 수 있다. 정량화된 데이터 기반 평가 방식은 외부 검증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정책의 투명성과 국민 신뢰도를 높이는 데 효과적이다.
공공기관이 감정평가와 AVM을 병행해 사용하는 ‘이중 검증 체계’는 자산매입의 신뢰성과 효율성 확보를 위한 현실적인 대안으로 평가된다.
이제 공공기관의 자산평가도 사람의 ‘감(感)’이 아닌, 데이터 기반 ‘검증’의 시대로 전환해야 한다. 감정평가는 유효한 수단이지만, AVM은 그 평가를 객관화하고 정밀화하는 새로운 표준이다.
공공부문이 이를 수용하고 제도화할 때, 투명한 자산관리의 기반이 마련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