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정부가 한국토지주택공사(LH)를 '창립 63년(주택공사 기준)'만에 마침내 ‘공공디벨로퍼’로 등극시켰다. 그동안 공공택지를 조성해 민간에 매각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직접 개발·공급을 맡는 주체로 전환한 것이다. 이번 9·7 공급대책은 단순한 물량 확대가 아니라 공공이 개발이익을 환수하고 공급 속도를 주도하겠다는 선언이다. 그러나 LH는 동시에 재원 조달과 집행 역량이라는 시험대에 올랐다. 향후 5년, 수도권 7만5,000가구 공급 성과가 공공주도 모델의 성패를 가를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 ‘택지 매각’에서 ‘직접 시행’으로
정부는 공공택지 민간 매각을 전면 중단하고 LH가 직접 주택을 개발·공급하는 구조로 전환한다. 과거에는 공공이 조성한 택지를 민간이 분양받아 개발했다. 하지만 호황기에는 민간이 개발이익을 과도하게 가져가고 불황기에는 공급이 지연되는 문제가 반복됐다.
앞으로는 ‘LH가 조성한 택지는 민간에 매각하지 않는다’는 원칙이 법제화된다. 이는 단순한 사업 방식 변경을 넘어 공공이 공급 속도를 책임지는 체계 전환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9·7 주택공급 확대 대책에서 밝힌 LH의 공공주택 공급 계획 개요. 공공택지는 직접 시행으로 전환해 5년간 7만5,000가구 이상을 공급하고, 사업 절차 단축과 신규 공공택지 확보 방안도 병행한다. (자료=국토교통부)

◆ 5년간 7.5만가구, 2030년까지 37만가구
LH는 향후 5년간 수도권 공공택지에서 7만5,000가구를 직접 개발한다. 전체적으로는 2030년까지 37만2,000가구 착공을 목표로 한다. 특히 역세권 등 우수 입지에는 중산층도 입주할 수 있는 공공임대주택을 확대한다.
건설 공정은 민간 건설업체들이 맡는다. ‘도급형 민간참여사업’ 방식으로 추진, 각 건설사들의 주택 브랜드 사용과 설계 다양성은 살리면서, 공급 속도는 공공이 통제하는 구조다.

◆ 비주택 용지 전환·공급 다각화
LH는 상업·업무용지 등 비주택 용지도 주택용지로 전환한다. 수도권 6개 신도시 규모인 1,950만㎡ 가운데 장기간 활용되지 않은 토지를 활용해 2030년까지 최소 1만5,000가구를 추가 공급할 계획이다.
국토부는 ‘공공택지 재구조화 심의위원회’를 신설해 대상지를 정례적으로 점검하고 절차를 간소화한다. 또 지자체와 주민 협조를 유도하기 위해 개발이익 일부를 지역에 재투자하는 방안도 병행한다. 정부는 이를 통해 유휴 토지를 공급 물량으로 전환하는 동시에, 지역 반발을 최소화하는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 속도전과 ‘착공 기준’ 관리
정부는 공급 실적을 인허가가 아닌 '착공 기준'으로 관리한다. 과거에는 계획 물량만 발표되고 실제 착공·입주로 이어지지 못한 사례가 많았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사업 집행력을 담보하기 위해 ‘인허가→착공→입주’ 전 과정을 모니터링한다는 방침이다.
구윤철 부총리는 “오는 2030년까지 서울·수도권에 135만 가구를 착공하겠다”며 “재건축·재개발 절차 간소화, 토지보상 조기화로 사업 기간을 단축하겠다”고 밝혔다. 정부는 특히 도심 내 재개발·재건축 지연 요인을 줄이고, 실제 공사 단계로 이어지는 실적 관리를 통해 공급 차질을 막겠다는 구상이다.

◆ LH 과제, 재원과 역량
문제는 LH의 재무와 집행 능력이다. 지금까지 LH는 택지 매각 수익으로 임대주택 운영 손실을 보전해왔다. 매각이 중단되면 교차보전 구조가 흔들릴 수 있다.
정부는 직접 시행으로 발생하는 개발이익 회수, 필요 시 채권 발행이나 정부 자금 투입 등을 대안으로 제시했지만, 장기적 지속 가능성은 불투명하다. 또한 LH가 현장에서 사업을 관리할 전문성과 조직 역량을 얼마나 확보할 수 있을지도 관건이다.

◆ 세계 공공개발 모델과의 비교
공공이 직접 주택을 개발·공급하는 체계는 해외에서도 확인된다. 싱가포르 HDB는 토지 확보부터 개발·분양·임대까지 국가가 주도하며, 거주 가구의 약 78%가 HDB 주택에 거주한다.
일본 UR도시기구는 임대주택 개발과 도시재생을 직접 시행·관리하는 준공공 기관으로, 장기 임대 중심의 공급을 이어가고 있다.
유럽에서는 프랑스의 HLM이 지방정부·공적 법인이 주택재고의 약 17% 내외를 담당하고, 네덜란드는 비영리 주택협회(woningcorporaties)가 '사회주택'의 약 29%를 공공감독 아래 건설·운영한다. 공통적으로 개발이익의 공적 환수와 안정적 공급을 지향한다. 하지만 지속가능한 재원과 집행 역량 확보가 성패의 관건이라는 점도 동일하다.

◆ 하우징포스트 인사이트
LH의 ‘공공디벨로퍼’ 등극은 한국 주택공급 체계의 새로운 실험이다. 개발이익을 공공이 환수하고 공급 속도를 조율한다는 취지는 분명하다. 그러나 성패는 결국 재원 확보와 조직 역량, 그리고 민간과의 협업을 어떻게 설계하느냐에 달려 있다. 국토부 산하 공공주택 공기업이 63년 만의 디벨로퍼로 전환해서 기대 이상의 성과를 낸다면, 'K주택정책(한국주택정책)'의 패러다임이 한 단계 도약할 수 있을 것이다. 실패한다면 공공주택기관 신뢰는 오히려 큰 타격을 입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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