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우징포스트 칼럼니스트=임동준 자이랜드 대표]
전세사기 여파로 주택거래시장의 신뢰가 흔들리고 있다. 그리고 그 배경에는 불투명한 주택 가치 평가 체계라는 구조적 문제가 놓여 있다. KB시세, 공시가격, 감정평가가 현실을 제대로 담아내지 못하면서 청년·서민·고령층이 금융 혜택에서 배제되고 있어서다. 이 문제를 풀어낼 대안으로 최근 ‘AVM(자동가치평가모델)’이 부상하고 있다.
◆ 전세사기에서 금융 배제로
전세사기가 사회 문제로 부상했지만, 금융의 불평등은 그보다 더 광범위하다. 청년과 무주택 서민은 KB시세가 없는 빌라·다세대주택을 구하려 해도 대출이 막힌다.
저소득층은 전세보증보험 가입이 거절돼 계약이 무산되고,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는다. 고령층은 아파트가 아니라는 이유로 주택연금 가입이 제한돼 노후 안전망이 흔들린다.
지방 고령층은 공시가격과 실제 거래가의 괴리로 연금 수령액이 줄어들고, 귀농·귀촌을 통한 생활 안정 기회조차 막힌다.
이처럼 계층별 피해는 다르지만, 공통된 원인은 '불투명한 주택 평가 체계'다. 아파트 중심의 KB시세, 이해충돌 우려가 제기되는 감정평가, 현실과 괴리된 공시가격이 금융 접근을 가로막고 있다. 집값을 어떻게 평가하느냐가 곧 금융 접근의 출발점이자 가장 큰 장벽이 된 것이다.
◆ 해법은 AVM, 데이터 기반 평가
해법을 찾아가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방대한 거래 데이터를 기반으로 주택 가치를 자동 산출하는 AVM(자동가치평가모델) 도입이다. AVM은 특정 기관이나 이해관계에 휘둘리지 않고 시장을 객관적으로 반영한다.
이를 적용하면 청년과 서민은 합리적 대출 기회를, 고령층은 안정적 연금을, 지방 도시는 활발한 거래와 금융 활성화를 기대할 수 있다. 금융기관 입장에서도 리스크 관리와 비용 절감 효과를 동시에 얻는다. 실제로 해외에서는 이미 AVM을 금융 심사에 활용해 주택담보대출과 보증상품의 효율성을 높이고 있다. 한국에서도 이를 제도화한다면 주거금융의 불평등 구조를 크게 개선할 수 있다.
◆ 데이터가 보여준 가능성
최근 자이랜드(XAI Land)는 6,000건의 빌라와 9,000건의 단독주택 거래 데이터를 분석해 기존 시세 대비 정확도를 두 배 가까이 높였다. 만약 이 평가 방식이 보증기관과 은행에 적용된다면 매년 수천억 원대의 보증사고와 부실 리스크를 줄일 수 있다.
이는 ‘포용금융(금융 소외계층까지 포괄하는 금융 서비스)’이 단순한 서민 지원이 아니라, 금융 시스템을 더 튼튼하게 만드는 개혁임을 보여준다. 특히 빌라·다세대와 단독주택처럼 기존 평가 체계에서 소외됐던 영역일수록 AVM의 효과가 크게 나타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 제도화 논의의 장으로
이제는 제도화가 시급한 상황이다. 이를 위해 최근에는 관련 업계와 국회·정부·시민단체 등에서 다양한 움직임이 일고 있다. 오는 26일 국회에서는 ‘포용금융 3.0 시대 – 금융소외자를 위한 포용금융 방향과 실천전략’ 세미나가 열린다. 이번 세미나·토론회에서 AVM을 포함한 새로운 평가 체계 도입 방안이 공개된다. 금융에서 밀려난 이들에게 제도적 해법을 제시할 이번 논의가, 포용금융의 새로운 출발점이 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