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시가격이 정확하지 않으면 피해는 조용히, 그러나 광범위하게 발생한다. 과도한 재산세를 내거나, 반대로 복지 혜택에서 누락되는 일이 벌어진다.
국회입법조사처가 지난 22일 발표한 보고서는 "이 같은 부작용이 결코 일시적이지 않으며, 구조적인 개혁 없이는 반복될 수밖에 없음"을 경고했다.
그리고 그 해법으로 떠오른 것이 AVM(자동가치산정모형)이다. AVM은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부동산의 시장가치를 신속하고 객관적으로 산정하는 자동화 시스템이다. 이제 중요한 것은 하나다. 우리는 어떤 AVM을 선택할 것인가.
◆ 부동산 가격공시제도의 신뢰 위기
우리나라 부동산 가격공시제도는 오랜 기간 '정부 주도의 감정평가와 행정적 산정'에 의존해왔다. 그러나 매년 발표되는 공시가격은 시장실거래가와의 괴리, 지역 간 불균형, 예측 오류 등으로 비판을 받아왔다. 실제로 일부 지역에선 공시가격이 시세의 60%에도 미치지 못하거나, 오히려 초과하는 사례도 빈번하다. 이로 인해 조세 형평성은 물론 복지 수급 기준에도 왜곡이 발생하며, 공공정책 전반의 신뢰가 훼손되는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
공시가격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과 지적은 '단순한 행정 오류 수준'을 넘어선 지 오래다. 시장의 신뢰 기반을 흔드는 제도적 리스크와 공정·형평이라는 국가의 기본 질서를 해치는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한다.
◆ AVM 도입, 이젠 '기술'보다 '선택'이 중요
자동가치산정모형(AVM)은 인공지능과 빅데이터 기반으로 부동산 가치를 산정하는 기술이다. 정부도 이미 그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으며, 관련 기술은 시장에서도 다수 구현되고 있다. 문제는 단순한 도입 여부가 아니라, '어떤 방식의 AVM'을 선택할 것인가다.
현재 국내·외에 존재하는 AVM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뉜다. 첫째는 '금융기관 중심의 상업형 AVM'
이다. 이들은 주택담보대출 평가에 활용되며, 대출 한도를 늘리기 위해 시장가치를 과대 산정하는 유인이 존재한다.
이러한 모델은 오차율의 낮음을 강조하지만, 실제로는 산정 방식이나 데이터의 편향성, 리스크 정보가 충분히 공개되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과잉대출, 자산 거품, 금융 불안을 초래할 수 있는 위험한 구조다.
둘째는 '공공성과 투명성을 핵심에 둔 AVM'이다. 이 유형은 산정 알고리즘, 예측 정확도, 지역별 성능 차이 등을 명시하며, 시장 실거래가에 근접한 결과를 제공한다. 소비자 보호와 시장 신뢰를 동시에 담보할 수 있는 유일한 방식이다.
◆ 공공형 AVM, 이미 현실화
민간에서도 '공공형 AVM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기술적 구현에 나서고 있다. 자이랜드(XAILand)라는 업체의 경우 공공기관·금융업계를 대상으로 이미 'AVM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고, 산정 방식과 오차율, 실패 가능성 등을 모두 투명하게 공개하고 있다.
해당 업체는 지난 2월 국회(민병덕·유동수 의원실) 세미나에서도 관련 성과를 발표했다. '자동가치산정의 정확성 분석 및 투명성 관리 방안'이라는 학술 논문을 통해 모델의 사회적 책임성을 제시했다. 이러한 사례는 AVM이 단순히 기술적 가능성에 그치지 않고, 공공성 중심으로 실현 가능하다는 점을 입증한다.
◆ 공시가격 개혁, 지금 필요한 건 '결단'
정부는 문제를 인식했고, 기술은 존재하며, 민간은 이미 투명한 해법을 제시했다. 남은 것은 정부와 국회의 선택이다. AVM 도입은 기술의 문제가 아니다. 국민의 삶과 직결된 공공 가치의 선택이다. 공시가격을 둘러싼 불신의 고리를 끊고, 공정한 조세와 복지 체계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수익 중심의 상업형 모델이 아니라, 신뢰 가능한 공공형 AVM을 채택해야 한다.
지금도 누군가는 과도한 세금을 내고, 누군가는 복지에서 탈락한다. 그 피해는 조용하지만, 결코 작지 않다. 정부는 기술이 아닌 책임과 공공성의 기준에서 선택해야 한다. 이제는 망설일 시간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