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주택금융청(FHFA)이 24일 암호자산을 주택담보대출(모기지) 심사 항목으로 반영하는 방안을 공식 검토하면서, 글로벌 주택시장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그래픽=하우징포스트 디자인팀)

[하우징포스트=박영신 대기자]
비트코인(BTC)과 스테이블코인(stablecoin, 가치 고정형 암호화폐) 같은 디지털자산(digital asset)이 미국의 주택시장에 발을 들일 수 있을까.
미국 연방주택금융청(Federal Housing Finance Agency, FHFA)이 암호자산을 주택담보대출(mortgage, 모기지) 심사 항목으로 반영하는 방안을 공식 검토하면서, 실물자산과 디지털자산을 연결하려는 새로운 금융 실험에 글로벌 시장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 디지털자산, 주택구매 가능해질까?
이번 검토가 제도화될 경우, 비트코인 등 암호자산이 ‘투기 수단’을 넘어 제도권 금융 자산으로 인정받는 전환점이 될 수 있다는 평가다. 이미 두바이·일본·싱가포르 등도 디지털자산과 부동산을 연계하는 제도 실험에 속도를 내고 있다.
한국 역시 이재명 정부가 디지털자산기본법과 원화 스테이블코인 제도화를 공식화하면서 이 흐름에 발맞추고 있다.

국가별 디지털자산-부동산 연계 제도 현황.(그래픽=하우징포스트 디자인팀)

◆ 미국, “암호자산, 대출담보 가능성 검토”
미국 연방주택금융청은 지난 24일(현지시간), 디지털자산을 주택담보대출 심사 기준에 포함할 수 있을지를 공식 연구하겠다고 밝혔다. 빌 풀트(Bill Pulte) FHFA 청장은 엑스(X, 구 트위터)를 통해 “암호자산을 주택금융 심사에 반영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미국의 대표적인 주택금융기관인 패니 메이(Fannie Mae)와 프레디 맥(Freddie Mac)은 현재 '예금 등 현금성 자산만을 인정'하고 있다. 암호자산은 미화(USD, 미국 달러)로 환전한 뒤 일정 기간 은행 계좌에 예치된 경우에만 간접 반영된다.
FHFA의 이번 발표는 암호자산 자체를 금융 자산으로 직접 인정할 수 있는 첫 정책 실험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미국 내에서도 “디지털자산을 제도권 자산으로 편입하려는 첫걸음”이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 두바이·일본·싱가포르…‘토큰화 실험’ 본격화
디지털자산과 부동산을 연결하려는 실험은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두바이 토지청(Dubai Land Department, DLD)은 XRP 기반 블록체인 기술을 적용해 부동산 권리를 ‘토큰화(tokenization)’하는 시스템을 시범 운영 중이다.
두바이 정부는 오는 2033년까지 총 160억 달러 규모의 부동산 거래를 블록체인 기반으로 전환할 계획이다.
일본 금융청(Financial Services Agency, FSA)은 암호자산을 금융상품으로 재분류하고, 법·세제 개편을 통해 디지털자산 기반 대출 플랫폼을 준비하고 있다.
싱가포르 고등법원은 스테이블코인을 ‘신탁 가능한 자산(trust asset)’으로 인정했다. 통화청(Monetary Authority of Singapore, MAS)도 디지털자산 결제와 대출 인프라를 정비 중이다.

◆ 한국도 흐름 합류…이재명 정부, 법제화 시동
한국도 이 흐름에 발맞춰 움직이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대선 공약을 통해 '디지털자산기본법 제정'과 '원화 기반 스테이블코인 발행·유통의 제도화'를 핵심 정책으로 제시했다. 이후 대통령직인수위원회와 금융위원회를 중심으로 관련 입법과 인프라 논의가 꾸준히 이어졌으며, 현재는 국회 정무위원회와 여야 정책라인에서 토큰증권(STO, Security Token Offering), 디지털자산 거래소 허가제 등의 세부 법안 검토가 진행 중이다.
특히 금융위원회는 “실물 연계형 디지털자산에 대한 규율 체계를 우선 정비하겠다”며 기초자산 기반 토큰 발행(토큰증권)과 스테이블코인 법적 정의 확립을 중점 추진 중이다.
다만, 주택금융 분야에서 암호자산을 직접 담보로 인정하는 실증 실험이나 제도화 로드맵은 아직 구체화되지 않았다.
금융업계 일각에서는 “가격 변동성, 담보 평가 기준, 회수 절차 등이 정비되지 않으면 금융 리스크만 키우게 될 수 있다”며 실무적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로벌 제도 정비 속도가 점차 빨라지고 있는 만큼, 한국도 선제적 대응 전략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는 공감대도 커지고 있다.

디지털자산 유형별 주택금융 연계 가능성.(그래픽=하우징포스트 디자인팀)

◆ 디지털자산 담보화, 기회와 과제
디지털자산을 주택금융에 활용하려는 움직임은 단순한 금융 실험을 넘어 구조적 변화를 시도하는 흐름이다.
자산 평가의 기준을 확장하고, 대출 진입 장벽을 낮추는 계기로 작용할 수 있다. 특히 암호자산을 실물경제와 연계하는 작업은 청년층, 스타트업 종사자, 글로벌 투자자 등 기존 금융 시스템 바깥에 있던 계층에게 새로운 기회를 열어줄 수 있다. 스마트계약 기반 자동화 시스템은 금융 효율성과 투명성을 동시에 높이는 도구로 기대된다.
하지만 기회와 위험이 동시에 존재한다. 디지털자산 특유의 가격 급등락, 담보 가치의 불안정성, 제도적 회수 체계의 부재는 담보 자산으로서의 신뢰도를 낮추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자금세탁이나 조세 회피 같은 금융 범죄 리스크가 제도권 안으로 흘러들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디지털자산 관련 전문가들은 “이제는 담보의 개념 자체가 바뀌고 있는 상황”이라며, 단순한 규제보다는 기준 마련과 검증 시스템 구축이 핵심 과제라고 지적한다. 미국을 비롯한 주요국들의 실험 결과가 글로벌 금융 질서에 어떤 영향을 줄지는 미지수지만, 이제는 한국도 ‘실물자산과 디지털자산의 연결 구조’에 대한 해법을 고민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