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에 걸친 대규모 정비를 마친 '서울 종로구 훈정동 종묘 정전'이 일반에 공개됐다. 조선 왕조의 정통성과 전통 건축미를 상징하는 공간으로, 환안 의례를 통해 왕과 왕비의 신주도 다시 돌아왔다. (사진=국가유산청)
[하우징포스트=박영신 대기자]
조선 왕조의 정통성과 전통 건축의 미학을 상징하는 종묘 정전이 오랜 침묵을 깨고 다시 문을 열었다. 수백 년을 이어온 제례의 공간이자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이 건축물은 전통기법으로 새 단장을 마치며, 다시금 한국 문화유산의 중심 무대로 복귀했다.
기와를 올리고 단청을 칠하던 장인의 손길부터, 신주를 실은 행렬의 엄숙함까지. 그 긴 복원과 귀환의 여정은 조선 왕실이 남긴 정신의 깊이를 다시금 일깨운다.
◆전통 복원의 진수…5년 만에 완공
국가유산청은 20일 조선 왕조의 정통성과 전통 건축미를 상징하는 '종묘 정전(正殿)'이 5년간의 대규모 보수공사를 마치고 일반에 공개됐다고 밝혔다. 서울 종로구에 자리한 국보 제227호 종묘 정전은 조선 역대 왕과 왕비의 신주(神主)를 모신 공간으로, 이번 복원은 1989년 이후 30여 년 만의 전면 정비다.
정전은 1395년 태조 이성계가 창건한 뒤, 임진왜란을 거쳐 광해군 대에 중건됐다. 이후 영조와 헌종 대에 확장되며 현재의 19칸 구성을 갖추게 됐다. 이번 정비는 문화재로서의 역사성과 안전성을 동시에 확보하기 위한 작업으로, 지난 2020년 착공 이후 총 200억 원이 투입됐다.
◆수제 기와·단청·석축까지…전통기법 총동원
정비의 핵심은 전통 건축 기법을 고스란히 재현하는 데 있었다. 가장 눈에 띄는 작업은 기와 교체다. 이전까지 혼용되던 공장제와 수제 기와를 모두 철거하고, 수제 기와 7만 장이 새로 제작돼 정전 지붕에 얹혔다. 제와장 김창대 보유자가 기와를 굽고, 번와장 이근복 보유자가 이를 정밀하게 시공했다.
지붕의 용마루는 본래의 흰빛을 되찾았고, 단청은 전통 안료와 방식으로 새롭게 채색됐다. 정전 앞 마당에 깔려 있던 시멘트 모르타르는 손으로 빚은 전통 전돌로 모두 교체됐다. 월대(月臺)의 석축과 서월랑 등 구조물도 해체 이후 복원됐다. 흰개미 피해가 확인된 부분에는 방재 처리가 병행됐다.
◆상량문과 연륜 분석…역사성 입증
복원 과정에선 귀중한 역사 자료도 발굴됐다. 지난 2023년, 정전 11번째 방 종도리 하부에서 약 300년 전 상량문(上樑文)이 발견된 것이다. 이는 1726년 영조 대에 정전을 증축하며 작성된 문서로, '종묘개수도감의궤'와 정확히 부합하는 내용이다.
또한 해체한 목재 부재의 연륜 분석 결과, 광해군 시기의 목재가 사용된 사실이 확인되며 임진왜란 이후 중건 기록이 과학적으로 입증됐다. 국가유산청은 이 같은 자료를 국립고궁박물관에서 보존 처리하고 있으며, 향후 연구와 전시에 활용할 계획이다.
◆49위 신주 환안…155년 만의 귀환 의례
이날 창덕궁 선원전에 임시 봉안돼 있던 조선 왕과 왕비의 신주 49위도 환안 행렬을 통해 정전으로 돌아왔다. 이는 1870년(고종 7년) 이후 155년 만에 이뤄진 공식 환안 의례다.
신주를 실은 신연(神輦) 28기와 말 7필이 선두에 선 가운데, 행렬은 광화문에서 종묘까지 약 3.5㎞ 구간을 천천히 이동했다. 종묘에 도착한 뒤에는 전주이씨대동종약원의 주관으로 고유제(告由祭)가 봉행됐다.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 최응천 국가유산청장을 비롯한 시민, 주한 외교사절단 등이 참석해 행렬을 지켜봤다. 정전 앞 신실에서는 제복을 갖춘 종친 120명이 40여 분간 예를 올렸다.
◆세계유산 30주년…공연·전시로 이어지는 감동
종묘 정전 개방은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30주년을 기념하는 일련의 문화행사와도 맞물린다. 국가유산청은 21일부터 오는 6월 16일까지 ‘삼가 모시는 공간, 종묘’ 특별전을 통해 보수 과정과 종묘의 역사 자료를 소개한다.
또한 24일부터 내달 2일까지는 야간 종묘제례악 공연, 26일부터 내달 2일까지는 조선 시대 왕비가 참여했던 국가 의례 재현 행사도 열린다. 다음달 4일에는 코로나19와 공사로 중단됐던 종묘대제가 6년 만에 정전에서 일반에 공개될 예정이다.
◆종묘 정전은 어떤 공간인가
종묘는 '조선 왕조의 정통성'과 '유교적 제례 질서를 상징'하는 국가적 공간이다. 정전은 그 중심 전각으로, 태조 이성계 창건 이래 역대 왕과 왕비의 신주를 모신 곳이다. 현재 총 19칸의 방에 49위의 신주가 봉안되어 있으며, 영녕전에는 별도로 34위가 모셔져 있다. 1985년 국보로 지정됐고, 1995년에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돼 세계적으로도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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