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주택조합 분쟁 및 인가 현황. (그래픽=하우징포스트 디자인팀)
[하우징포스트=박영신 대기자]
이재명 대통령의 직접 지시에 따라 국토교통부가 전국 지역주택조합 실태조사에 착수한 결과, 전체의 30% 이상에서 운영 비리와 갈등이 확인됐다.
전국 618개 조합 중 187곳에서 총 293건의 분쟁 사례가 발생했으며, 조합장 횡령과 시공사의 공사비 증액 요구, 금융사의 부당 개입 등으로 인해 서민 조합원들의 피해가 심각한 수준으로 나타났다. 정부는 제도 도입 45년 만에 전면적인 구조 개편에 나선다. 이달부터 내달 말까지 전수 실태점검과 중재·조정, 제도 개선 방안을 병행할 계획이다.
◆ 대통령 지시로 조사 본격화…“이대론 안 된다”
이번 실태조사는 지난 5월 광주·전남 타운홀 미팅에서 지역주택조합 피해 조합원의 하소연을 들은 이재명 대통령이 실태 점검을 직접 지시하면서 본격화됐다.
국토부는 이에 따라 지난달 20일부터 이달 4일까지 전국 618개 지역주택조합을 대상으로 분쟁 현황 조사를 실시했고, 그 결과를 8일 발표했다.
지역주택조합 제도는 1980년 도입 이후 무주택자나 소형 주택 보유자가 자율적으로 조합을 구성해 공동주택을 공급받는 방식이다. 초기에는 민간 주도형 공급 확대의 보완책으로 주목받았지만, 최근에는 토지 확보 지연, 업무대행사 개입, 공사비 부담 증가, 금융사들의 일방적 개입 등으로 사업이 좌초되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 특히 조합 내부의 조합장 비위와 외부 시공사·금융사의 횡포가 중첩되며 제도적 한계가 드러나고 있다는 분석이다.
◆ 조합 절반은 설립 인가도 못 받아…3년 이상 표류도 다수
국토부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전체 618개 조합 중 316개(51.1%)는 여전히 조합원 모집 단계에 머물러 있다. 이 가운데 208개 조합(33.6%)은 모집 신고 후 3년이 지나도록 설립 인가를 받지 못한 상태다.
현행 제도상 조합 설립 인가를 받기 위해서는 대지의 80% 이상 사용권원과 15% 이상 소유권 확보가 필요하지만, 이를 충족하지 못하는 사례가 절반을 넘는다.
사실상 사업 추진이 불가능한 상태에서도 조합원 모집과 분담금 수령이 지속되는 구조는 실수요자 조합원에게 과도한 재정 부담과 불확실성을 전가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 조합장 비리부터 시공사·금융사 횡포까지
분쟁 유형으로는 조합장 비위, 탈퇴금 환불 지연, 시공사와의 공사비 갈등, 금융사 개입 등이 주를 이뤘다. 일부 조합장들은 자격 미달 조합원에게 분담금을 받고도 환불을 거부하거나, 지정된 신탁계좌가 아닌 개인 계좌로 자금을 유입시키는 등 불투명한 자금 운용으로 고발되기도 했다.
시공사들도 문제다. A지역 조합에서는 시공사가 착공 지연과 물가 상승을 이유로 최초 계약 대비 50%에 이르는 930억 원의 공사비 증액을 요구하며 분쟁이 격화됐다.
조합원은 협상력이 없는 상태에서 비용을 떠안고 있으며, 구조적으로 시공사에 종속되는 관계가 지속되고 있다.
금융·신탁사의 횡포도 속출하고 있다. 일부 금융사는 자금 대출 및 관리 과정에서 계약 조건의 일방적 변경, 담보 해지 지연 등 부당 행위를 일삼고 있다는 것이 현장의 증언이다. 경기도 광주의 한 지역주택조합은 대출금을 전액 상환했음에도 금융사가 갖가지 황당한 사유를 내세우며 1년 반 넘게 담보(질권)를 해제하지 않아 사업부지 매각이 중단됐다. 조합 측은 “담보를 인질 삼아 힘없는 조합원을 상대로 불법적 갑질을 자행하는 것”이라며 분노를 표했다.
◆ 분쟁지역 서울·경기·광주에 집중…제도 신뢰 추락
분쟁은 대도시권을 중심으로 집중됐다. 서울은 전체 110개 조합 중 64곳(57.3%)에서 분쟁이 확인됐으며, 경기(118곳 중 32곳), 광주(62곳 중 23곳) 등이 뒤를 이었다.
조합사업이 활발했던 지역일수록 분쟁 위험이 더 크다는 분석이다. 현장에서는 총회 미개최, 회계 자료 비공개, 운영비 유용, 업무대행사의 과도 개입 등 비정상적 운영 사례가 빈발하고 있다. 이로 인해 제도에 대한 신뢰도 전반적으로 흔들리고 있는 실정이다.
◆ 8월 말까지 실태점검…제도 전면 재정비 예고
국토부는 이번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전국 618개 조합에 대한 전수 실태점검을 이달부터 8월 말까지 실시할 예정이다. 분쟁이 집중된 조합은 관계기관과 합동으로 특별점검을 실시하고, 중재·조정도 병행한다.
정부는 이번 실태조사를 계기로 ▲업무대행사 등록 요건 강화, ▲조합원 탈퇴 시 환불 기준 명문화, ▲시공사 공사비 산정의 투명성 확보 등을 중심으로 제도 개선을 추진할 계획이다. 관련 연구용역을 진행해서 연내 제도개선안을 내놓을 예정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지역주택조합은 자율적 주택공급이라는 본래 취지와 달리 조합원 피해의 진원지로 변질되고 있다”며 “제도의 틀을 근본적으로 손질하지 않으면 지속 가능성이 없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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