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켄트에 지어진 하트딘 반즈 단지 내 주택. 유기농 텃밭과 생태회랑을 갖춘 넷제로 주택 단지다.
[하우징포스트=박영신 대기자]
태양광, 빗물 재활용, 지열 냉난방으로 외부 전력망·상수도 없이 생활하는 ‘오프그리드(Off-Grid) 럭셔리 주택’이 기후위기·탄소감축 흐름 속에서 고급 주택시장에 등장했다.
8일 영국 ‘더 타임스(The Times)’는 웨일즈 펨브로크셔 연안의 톤섬(Thorne Island) 요새 주택이 300만 파운드(약 55억9,500만원)에 매물로 주택을 소개했다. 태양광·빗물 수집·오프쇼어(Offshore·해안 외곽의 바다에 인접한 위치·설비) 하수 처리 등 완전 자급형 설비를 갖춘 점을 설명했다.
영국의 고급 부동산 전문지 ‘컨트리 라이프(Country Life)’는 지난달 잉글랜드 남동부 켄트(Kent)주에 위치한 ‘하트딘 반즈(Hartdene Barns)’ 단지의 완공 소식을 전했다. 이 단지는 영국왕립건축가협회(RIBA)의 ‘리바 클라이밋 챌린지(RIBA Climate Challenge)’ 기준을 충족한 넷제로(Net Zero) 주거단지로, 에너지 절감과 탄소 배출 저감을 위한 첨단 설계·시공이 적용됐다.
파이낸셜 타임스(Financial Times)도 최근 스페인 안달루시아 소토그란데의 ‘빌라 누운(Villa Noon)’을 '오프그리드 럭셔리 트렌드'의 대표 사례로 소개했다. 현재 사빌스(Savills)·라이트무브(Rightmove) 등 고급 주택 판매 채널에 분양 정보(1,140만 유로, 약 184억4,520만원)가 올려졌다.
영국 웨일즈 ‘톤섬’의 요새 주택. 태양광·대용량 저장·빗물 수집·오프쇼어 하수 등 완전 오프그리드 설비를 갖췄다는 게 개발회사측 설명
◆유럽·북미서 잇단 공개…집값은 프라임, 기능은 ‘완전 자급’
영국 켄트(Kent)에 자리한 ‘하트딘 반즈(Hartdene Barns)’는 유기농 텃밭과 생태회랑을 갖춘 9가구 규모의 고급 넷제로(Net Zero) 주택 단지다.
태양광과 공기열원 히트펌프, 전열교환 환기시스템(MVHR), 저탄소 콘크리트, 고단열 설계, 전기차 충전 시설 등 영국왕립건축가협회(RIBA)의 ‘클라이밋 챌린지(Climate Challenge)’ 기준을 충족하는 사양을 적용했다. 분양가는 주택 규모에 따라 125만 파운드(약 23억3,125만원)에서 250만 파운드(약 46억6,250만원)까지 책정돼 있다.
스페인 안달루시아 주 소토그란데(Sotogrande)의 ‘빌라 누운(Villa Noon)’은 대지 면적 4,502㎡, 연면적 2,756㎡ 규모의 초고급 빌라다. 침실은 6~8개, 스파·사우나·헬스장·실내 수영장·시네마·와인셀러 등 리조트급 편의시설을 갖췄다.
대기 중 수분을 추출해 생활용수를 확보하는 시스템(AWG)과 지열·태양광·배터리 설비를 결합해 외부 에너지망에 의존하지 않는 ‘제로 소비’ 주거를 구현했다.
설계는 스페인 유명 건축가 프란 실베스트레 아르키텍토스(Fran Silvestre Arquitectos)가 맡았다. 분양가는 1,140만 유로(약 184억4,520만원)로 책정됐다.
웨일즈 펨브로크셔 연안의 톤섬(Thorne Island)에는 19세기 빅토리아 시대에 지어진 해상 요새를 개조한 오프그리드 주택이 지어졌다. 태양광 패널과 100kWh 용량의 배터리, 약 25만ℓ 규모의 빗물 저장 설비, 역삼투 방식의 정수 시스템, 오프쇼어(Offshore·해안 외곽의 바다에 인접한 위치·설비) 하수 처리 시설을 갖춰 완전 자급이 가능하다.
실내 면적은 약 754㎡이며, 침실 5개를 갖춘 이 주택은 현재 300만 파운드(약 55억9,500만원)에 분양중이다.
최근 유럽에서 개발·분양 중인 주요 오프그리드 럭셔리 주택 사례. (그래픽=하우징포스트)
◆"환경이 곧 자산가치…디자인·위기 대응력)가 프리미엄"
해외 주택전문가들은 최근 '오프그리드 럭셔리 주택'을 기후위기 시대의 ‘탄소제로’ 상징 주거모델로 전망하고 있다.
태양광·지열·빗물 재활용 등으로 에너지·용수·폐기물의 전 과정을 자급하는 구조는 재난·격리 상황에서 장기간 거주가 가능한 ‘레질리언스(Resilience·위기 대응력·회복력)’를 제공한다.
특히 전력·용수망이 끊기거나 외부 접근이 제한되는 경우에도 생활을 유지할 수 있어, 일부 국가는 이를 ‘국가 재난대응형 주거’ 연구 대상에 포함시키고 있다.
해안·섬·전원 등 자연 입지의 장관을 최대화하는 맞춤형 디자인과 고급 인테리어, 첨단 스마트홈 시스템이 결합되면서 자산 가치가 높아진다는 분석이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남유럽과 미국 고급주택 시장에서 ‘오프그리드 럭셔리’ 수요가 늘고 있다며, “환경친화적 설계가 투자 가치의 새로운 척도가 되고 있다”고 밝혔다.
스페인 소토그란데 ‘빌라 누운(Villa Noon)’ 조감도. 지형을 따르는 원형 매스 설계에 태양광·지열·배터리·AWG 시설을 적용해 ‘제로 소비 주택’으로 구성됐다는 게 건축가의 설명이다. (사진=프란 실베스트레 아르키텍토스(Fran Silvestre Arquitectos) 공식 웹사이트)
◆대중화·상업화 조건과 장애 요인
주택업계는 '오프그리드 주택'이 확산되려면 태양광·배터리 가격 하락, 모듈러·표준화 기술의 신속한 진전이 전제돼야한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미국 캘리포니아주와 호주 일부 주정부는 오프그리드 설계 주택에 세제 혜택과 건축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있다. 북유럽 국가들은 농촌·산간 지역에서의 도입을 장려하고 있다.
그러나 초기 설비 투자비(CAPEX)가 수십억 원에 이르고, 보전지역·연안·도서 등에서는 환경보호법·경관법·해양법 등 복합 규제가 적용돼 지역별 인허가 절차와 소요 기간에 큰 차이가 발생한다. 컨트리 라이프와 온더마켓 등 매체들도 고급 오프그리드 주택이 상용화되기 위해서는 비용·규제·인프라 보완이 병행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국내도 ‘관심 고조’…전원주택·아파트 등에서 도입 시도
국내에서는 아직 상업화된 오프그리드 럭셔리 주택 사례가 없다. 하지만 주택 관련 설계·시공 기술분야에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제주·강원 등 자연환경이 뛰어난 지역과 수도권 외곽 전원·리조트형 부지가 초기 사업지로 거론된다.
건축 전문가들은 “정부의 재생에너지 보급 정책, 지방자치단체의 친환경 주거단지 조성 사업과 결합될 경우, ‘프리미엄+지속가능’ 콘셉트의 오프그리드 주택이 리조트·전원주택 시장에서 먼저 실현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또한 최근 국내 건설사들도 아파트 건설에 태양광·ESS(에너지저장장치)·빗물 순환 시스템을 패키지로 제공하는 실험을 꾸준히 진행해오고 있다. 이런 추세라면 우리나라도 조만간 상업화 단계로 접어들 수도 있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측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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