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신탁업계가 사면초가 위기에 몰리고 있다. 법원이 최근 책임준공 미이행에 따른 손해를 신탁사가 전액 배상하라는 판결을 잇따라 내놓은 데다, 당장 내일(7월 1일)부터는 책임준공형 토지신탁까지 영업용순자본비율(NCR) 규제 대상에 포함되면서 신탁사들의 사업 여건이 급격히 위축되고 있기 때문이다.
부동산신탁사들이 위험관리 차원에서 책임준공형 신탁사업에서 빠져나가면서 부동산개발업체(시행사)들의 개발자금조달 통로가 막히고, 이로 인해 주택공급 차질까지 우려되는 형국이다.
부동산신탁업계 위기 심화 요인 개요 (그래픽=하우증포스트 디자인팀)
◆책임준공 줄패소…소송 리스크 본격화
실제 최근 법원은 신한자산신탁과 무궁화신탁 등 주요 신탁사에 대해 책임준공 미이행에 따른 손해를 대출 원리금과 지연이자를 포함해 전액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자본시장법상 신탁사는 지급보증 주체가 될 수 없음에도, 법원은 계약서상 책임준공확약서의 문구를 근거로 실질적 보증책임을 인정했다고 부동산신탁업계는 주장한다.
업계에 따르면 현재 진행 중인 유사 소송만 13건에 이른다. 전체 청구금액은 3,400억원 규모로 추산된다. 신탁사들이 항소에 나섰지만, 업계 전반에는 책임준공 신탁 자체에 대한 회의감이 퍼지고 있다.
◆책임준공형 신탁, NCR 규제 대상 포함
금융위원회는 내일(7월 1일)부터 책임준공형 차입형 토지신탁도 NCR(영업용순자본비율) 산정 대상에 포함하는 금융투자업규정 개정안을 시행한다. 신탁사들은 이 규제로 인해 사업 여건이 빠르게 위축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NCR(Net Capital Ratio, 영업용순자본비율)은 신탁사의 재무건전성을 평가하는 핵심 지표다. 순자본을 총위험액으로 나눈 수치이며, 150% 이상은 안정적, 100% 이하로 하락하면 신규 수탁 제한이나 영업정지 등 제재가 가능하다.
이번 규제 개정으로 책임준공형 차입형 토지신탁까지 NCR 산정 대상에 포함되면서, 신탁사들은 위험액 증가와 함께 자기자본 대비 영업 한도 제약을 받게 된다. 아울러 금융위원회는 올해 말까지 총위험액을 자기자본의 150% 이내로 제한한 뒤, 2026년 말 120%, 2027년 말 100%로 단계적으로 기준을 강화할 방침이다.
이와 같은 규제 강화는 신탁사의 책임준공형 사업 철수를 가속화시키고 있다. 실제로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국내 13개 신탁사가 보유한 책임준공형 사업장은 2023년 580곳에서 2024년 말 기준 223곳으로 절반 이상 줄었다. 대형 신탁사들은 지난해 말부터 사업장 정리에 착수한 상태다.
◆PF 차단, 중소건설사 경영난 가속
문제는 이 같은 흐름이 부동산개발업계와 중소건설사들에게는 직격탄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자금력과 신용도가 부족한 중소 주택개발업체와 중소건설사들은 신탁사의 책임준공확약을 통해 금융기관으로부터 PF 대출을 조달해 왔다. 하지만 신탁사의 이탈로 인해 고금리 후순위 대출이나 사업 포기를 고려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고 있다.
실제로 올 1~5월 사이 폐업한 종합건설사는 214곳, 전문건설사는 830곳에 달했다. 건설경기 침체가 지속되는 가운데 PF조달 여건마저 악화될 경우, 지방 도시의 경우 신규 주택공급이 크게 줄어들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지방 주택시장의 경우 신탁업계의 책임준공을 기반으로 공급된 주택 물량이 많았기 때문이다.
◆주택공급 차질 현실화…정부 대응 촉구
책임준공형 토지신탁은 민간 주도 주택개발의 핵심적 도구였다. 하지만 지금은 시장 신뢰가 흔들리며 제도적 존립 기반이 위협받을 수 있다고 부동산개발업계도 주장한다.
부동산신탁업계는 “준공 이행의 책임과 금전 배상의 책임은 분리되어야 하며, 지급보증이 불가능한 신탁사에 원리금 전액 배상을 요구하는 것은 과도하다”며 법적, 정책적 재검토를 요청하고 있다. 이와 함께 책임 리스크를 분산할 수 있는 구조적 제도 개편, 준공보증기금 신설, 중소건설사에 대한 정책금융 강화 등이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다.
부동산신탁업계의 위기는 단순한 업계 차원의 문제를 넘어, 프로젝트파이낸싱 시장 위축과 중소건설사 도산, 그리고 지방의 주택공급 차질로 이어지는 ‘위기 도미노’로 현실화되고 있다.
정부와 금융당국이 규제 강화의 방향성을 유지하더라도, 시장의 실제 작동 구조를 반영한 세밀한 조율 없이는 위기의 골은 더 깊어질 수밖에 없다는 경고음이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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