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하우징’ 실행 위해 고려해볼 만한 국가정책과제.(그래픽=하우징포스트 디자인팀)

[하우징포스트=박영신 대기자]
대한민국은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으로 성장했지만, 우리의 주거문화는 여전히 고밀·고층 아파트라는 물리적 형태에 머물러 있다. 세계가 K-컬쳐에 열광하는 지금, 주거 영역에서도 한국의 정서와 문화를 반영한, 이른바 'K-하우징'의 정체성을 발굴하고 확립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에 따라 새 정부는 주택 공급 중심의 기존 정책 틀을 넘어, 문화 기반의 'K-주거전략'을 새롭게 수립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K-하우징'은 그러한 전략의 출발점이자, 국가 정체성을 공간으로 실현하는 실천 수단이다.

◆ K-하우징, 한국의 전통과 현대를 잇는 주거문화모델
'K-하우징'은 단지 건축 외형이나 스타일이 아니라, 한국적 정체성을 창조적으로 담아낸 21세기형 주거문화모델이다. 이에는 한국인의 생활양식, 기후환경, 공동체적 감수성이 각자의 방식으로 녹아 있으며, 과거의 정신을 현재의 기술과 감각으로 재해석한 새로운 공간철학이라 할 수 있다.
우리 조상들이 수천 년에 걸쳐 만들어낸 '한옥'은 단순한 전통 주거가 아니라, 자연과 공존하고 이웃과 소통하며 계절에 순응하는 삶의 방식이 스며든 건축 유형이다.
첨단 과학기술의 시대에도 한옥 정신을 계승한 ‘K-하우징’은 반드시 현대적으로 재구성되어야 한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의 문화 말살 정책과 해방 이후 서구식 근대건축의 대거 도입은 기존의 지역성과 정체성을 약화시켰다. 대표적으로 일제는 전통 목조건축을 억제하고 벽돌·시멘트 구조를 도입했으며, 1970~80년대 대단위 아파트 개발로 이어진 표준화된 주거 형태는 한국 고유의 공간 문화를 단절시켰다. 이러한 영향은 지금까지도 한국 건축의 정체성을 흐리게 만들고 있으며, 이를 바로잡기 위한 체계적 대응이 요구된다.
이제는 더 늦기 전에 이 정체성을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 첨단 문명과 인터넷으로 연결된 21세기 글로벌 환경 속에서 K-하우징의 방향을 설정하고, 시간을 들여 비전과 원칙을 세워야 한다. 근본 없는 정책은 문화가 될 수 없다. '전통을 박제하지 않고, 살아 숨 쉬게 현대화하는 것'—그것이 K-하우징의 본질이며, 우리 시대가 감당해야 할 문화적 과제다.

◆ K-하우징 형상화... “기술이 아닌 철학”
K-하우징은 단순히 '한옥 스타일 아파트'를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한국인의 삶의 리듬, 가족구조, 기후에 대한 대응, 공간에 대한 정서적 인식이 반영된 주거철학이다. 외형은 물론 실내외 공간 설계, 생활동선, 자연친화적 구조 등이 통합된 개념이다. 이를 통해 한국인의 주거문화와 삶의 습속을 세계인이 체감할 수 있도록 구현하는 것이 K-하우징의 목표다.
예를 들어, 마당은 커뮤니티 공간으로 재해석되고, 온돌의 원리는 에너지 효율 설계에 활용되며, 대청의 개방성과 바람길은 현대 주거 시스템에 반영될 수 있다. 이러한 시도들은 일부 건축가나 대안 공동체를 통해 제한적으로 진행되고 있지만, 이제는 제도권 정책으로 확대돼야 한다.
이제 국가는 보다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다. K-하우징은 문화와 주거, 건축과 기술이 융합된 통합정책으로 육성되어야 하며, 획일적 공급 중심 정책에서 문화 정체성 기반 주거정책으로의 전환이 절실하다.

◆ 'K-하우징'이 채워져야 품격 있는 'K-시티'가 건설
그동안 한국 도시는 ‘어쩔 수 없이 살기 위한 공간’으로 인식돼왔다. 시민들이 도시의 정체성과 문화적 품격을 보고 선택한 경우는 드물다. 그러나 이제 도시의 경쟁력은 ‘선택받는 공간’으로 전환되고 있다. 도시 공간의 품격과 독창성, 문화적 자산이 경쟁력을 좌우한다. 근본없는 무차별적 고층 아파트와 빌딩, 획일화된 도시 공간은 외면받을 수밖에 없다.
K-하우징은 도시를 차별화된 정체성으로 이끄는 실질적 기반이다. 앞으로 도시재생을 통해 새롭게 태어날 많은 도시들이 자체 문화와 환경, 공동체 특성을 반영해 'K-하우징'을 구현해나갈 필요가 있다. 이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K-하우징'은 도시의 경쟁력을 판가름하는 핵심 요소가 될 수 있다.
더 나아가 'K-하우징'은 일본의 와비사비, 북유럽의 미니멀리즘, 지중해의 테라코타 건축처럼, 한국 건축문화의 정수를 세계에 전달하는 수출형 문화자산으로 발전할 수 있다.

◆ K-하우징, 새 정부가 반드시 챙겨야 할 국가 전략
'K-하우징 정책'의 핵심은 제도화와 실행력 강화에 있다. 우선, 문화와 건축을 결합한 ‘K-하우징 진흥기본법’을 제정해 정책 추진의 법적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공공주택 개발에서 설계 공모 제도를 개편하고, 일정 물량 이상에는 'K-하우징 정체성 반영을 의무화하는 제도도 도입'할 필요가 있다.
또한 전통 건축기법과 현대 기술을 융합한 '첨단 K-하우징 모델'을 개발하고, 이를 시범사업으로 확산시키기 위한 전략이 필요하다. 지역의 문화와 지형을 고려한 ‘K-하우징 시범마을’을 도시와 농촌에 조성하고, 실제 거주 기반 실증 사례를 축적하는 것이 중요하다.
마지막으로, '수출형 K-하우징 디자인과 플랫폼'을 전략적으로 육성해 세계 시장에서 통용될 수 있는 문화 인프라로 발전시켜야 한다.
초기에는 낯설다는 반응이나 ‘형식적 재탕’이라는 비판에 직면할 수도 있다. 실제로 과거 일부 지역의 전통양식 주택 복원 사업은 주거 기능과 단절된 채 ‘관광형 전시 공간’에 그쳤다는 지적을 받은 바 있다. 그러나 이러한 시행착오를 피하고 지속적으로 보완·진화해간다면, 수천 년간 이어온 한옥을 넘어서는 ‘21세기형 한국 주거문화의 결정체’가 형성될 수 있을 것이다.
이제는 K-컬쳐에 버금가는 K-하우징을 찾아야 할 때다. 그 뿌리는 ‘한국인의 집’에 있다. 새 정부는 K-하우징을 한국 주거문화의 정체성 회복 수단이자, 미래 도시전략의 핵심 축으로 삼아야 한다. 그것이 21세기 대한민국이 추구해야 할 품격 있는 주거정책이며, 다음 세대를 위한 백년 대계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