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동준 자이랜드 대표/하우징포스트 칼럼니스트]
전세사기를 단지 범죄 행위로만 보면 해결이 어렵다. 주택시장에 구조적으로 깔려 있는 제도적 사각지대가 사기를 가능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에는 ‘감정가 오류’로 인해 전세보증보험이 거절되고, 이로 인해 정상적인 전세계약이 무산되는 현상이 반복되고 있다. 이처럼 집값을 어떻게 평가하느냐의 문제는 단순한 기술적 이슈가 아니다. 제도 전반의 신뢰 하락은 물론 실물자산시장에서와 부작용을 양산하는 문제로 연결된다.
◆ 보증 거절된 전셋집, 그 시작은 감정평가 오류
서울 송파구 암사동의 한 아파트형 주택에서 실제 사례가 있었다. 계약 직전까지 순조롭게 진행되던 전세계약이,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전세보증금반환보증 승인이 거절되면서 중단된 것이다. 이유는 단순했다. 해당 주택의 집값(주택가치)이 보증기관 기준보다 낮게 평가된 탓이다.
세입자는 “보증 없이 입주하긴 불안하다”며 계약을 철회했다. 집주인도 당황했다. 실거래로는 충분히 형성되고 있는 전세금이었지만, 해당 주택에 대한 감정가격이 지나치게 낮게 책정되자 보증 가입이 거절된 것이다. 현실의 시장 가격과 제도 속 평가 기준 사이의 괴리가 드러난 순간이었다.
◆ 감정가와 시장가격의 간극이 양산한 피해
전세보증보험 제도는 ‘적정 전세금’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부동산원 시세나 감정평가법인의 가격을 활용한다. 그러나 이 기준은 시장보다 보수적이거나, 실거래 반영이 지연돼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전세금이 2억5000만 원인데, 감정가는 1억8000만 원으로 평가되면, 보증기관은 위험물건으로 간주하고 보증을 거절한다. 이는 실거래가 기준에서는 정당한 계약일 수 있음에도, 기준 미달이라는 이유로 제도에서 탈락하는 셈이다.
이런 구조가 반복되면, 보증 없이 계약을 강행하거나, 계약 자체를 포기하는 일이 늘어난다. 그리고 보증이 안 되는 집이 늘수록, 전세사기를 기획하는 세력에게 유리한 시장 환경이 조성된다.
◆ 기술은 있는데, 문제는 제도 미비
이 문제를 기술로 해결할 수는 없을까. 해답으로 주목받는 것이 'AVM(자동가치산정모델)'이다. AVM은 주변 실거래 데이터를 기반으로 주택의 적정가치를 자동 산정하는 방식이다. 감정인의 주관이나 개입 없이, 일관되고 투명한 가격 산출이 가능하다.
이번 사례에서도 자이랜드가 제시한 AVM 보고서는 HUG 감정가보다 높은, 실거래 기반의 합리적인 집값 평가를 보여주었다. 하지만 현행 보증제도는 이 AVM 결과를 공식 기준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감정평가를 정식으로 다시 받으려면 예비감정 → 본감정 절차에 2~3주가 소요되며, 비용도 부담된다. 결국 기술은 준비돼 있지만, 제도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 현실이 문제다.
◆ 감정방식 안 바꾸면, 전세사기 근절 요원
전세사기의 구조적 원인 중 하나는 정확하지 않은 집값 평가 기준이다. 정상적인 거래조차 보증을 받지 못해 계약이 무산되고, 보증이 안 되는 전세 시장이 커지면 사기의 여지가 늘어난다. 이는 단지 평가 실수의 문제가 아니라, 제도의 구조적 결함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단속도 중요하지만, 집값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에 대한 기준 자체의 전환이다. 실거래 기반 평가모델(AVM), 데이터 중심의 자동 검증 체계를 보증제도 안에 반영할 때가 왔다. 주택 감정방식이 바뀌지 않으면, 전세사기는 멈추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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