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독일의 도시부흥 실행 기구 사례.(그래픽=하우징포스트 디자인팀)

[하우징포스트=박영신 대기자]
“이번에도 숫자, 세금, 재개발, 공공임대아파트뿐이었다.”
조기 대선을 앞두고 여야 후보들은 또다시 ‘공급’과 ‘재개발’ 중심의 판박이 공약을 꺼내 들었다. 언론도 여지없이 ‘부동산 공약’이라는 '중독 프레임'에 갇힌 채, 매번 되풀이되는 메뉴로 접근을 답습했다. 수십 년째 반복되는 언론들의 이같은 공약 요구 방식은 이미 체질화됐다.
‘아파트 공급 숫자’, ‘세금 조정’, ‘서울·수도권 재건축·재개발’은 정치권이 선거 때마다 자동으로 꺼내드는 단골 메뉴다. 그런데 이번엔 대선이 워낙 급작스럽게 치러진 탓에 그마저도 허술했다.
정치권이 익숙한 레퍼토리조차 소홀히 하자, 언론은 오히려 더 허탈해했다. “부동산 공약이 보이지 않는다”, “공급 빠진 공약” 같은 기사들을 쏟아냈다. 언론의 이런 모습은 한국 사회가 얼마나 ‘부동산 공약 프레임’에 길들여졌는지를 보여주는 단면이다. 이 기형적 구조는 1970년대 이후 반복돼온 ‘아파트 공급 중심의 부동산 공약’에 대한 강한 중독 반응이 만든 결과다.

◆ ‘부동산 공약’, ‘도시·주택 공약’으로 전환 시급
우리 사회는 지난 수십 년 동안 ‘아파트를 담는 도시’에 대한 성찰을 철저히 외면해왔다. 이 때문에 ‘국토’ ‘도시’ ‘주택’이란 기본 개념조차 대중 언어로 익숙하지 않다. 어렵고 낯설며 관심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 도시의 상태를 살피면서 아파트를 논의하는 방식은 어색하게 여겨진다. 아름답고 쾌적한 도시 비전을 말하는 정치인은 찾아보기 힘들다.
결국 질문이 없으니 답도 없다. 정치권도, 언론도, 학계도, 정부도 묻지 않는다. 애초에 질문할 의지조차 잃었다. 그러는 사이 상황은 더욱 악화되고 있다. 지방은 더 비고, 수도권은 더 밀집된다. 국토와 도시 공간 전략이 빠진 공약의 반복은 국가 균형을 무너뜨린다.
실제로 지금 대한민국은 ‘도시 쇠퇴’와 ‘국토 불균형’이라는 극한 위기에 직면해 있다. 도심은 낡고, 지방은 비며, 청년은 떠난다. 통계청 '국내인구이동통계'에 따르면, 2023년 한 해 동안 20~
34세 청년층 약 13만 명이 수도권으로 순유입됐다. 더 이상 단순한 인구 이동이 아니다. ‘지방소멸’을 넘어 ‘국가소멸’이라는 단어까지 등장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 ‘2030 도시부흥운동’, "선언 아닌 실행 시급"
‘2030 K-도시부흥운동’은 단순한 도시 정비사업이 아니다. 이는 도시의 정체성과 기능을 복원하고, 국토의 미래를 재설계하는 국가 전략이다. 도시란 삶의 공간이다. 산업과 교육, 복지와 문화가 어우러져야 지속 가능하다.
일본의 도시재생기구(UR)는 낙후 도심 정비와 공공임대 주택공급을 통합적으로 수행하고 있다. 독일의 도시개발은행(KfW)은 에너지 전환 중심의 도시정책을 금융정책과 연계해 실현하고 있다. 우리 역시 도시를 단순 개발이 아니라, 전략적 투자 대상으로 바라봐야 한다. ‘K-도시부흥기금’, ‘광역생활권 특구’ 등을 통해 복합적 개입과 조정을 실현해야 한다.

최근 9년간 청년인구 수도권 순유입 추이.(그래픽=하우징포스트 디자인팀)

◆ 지방소멸 막을 마지막 기회는 '지금'
행정안전부는 2023년 전국 89개 시·군을 인구감소지역으로 지정했다. 수도권 집중과 지방 공동화는 더 이상 경고가 아니다. 통계로 입증된 현실이다. 지금처럼 수도권 위주의 아파트 공급 공약만 반복된다면 국토 구조 자체가 지속 가능하지 않을 수도 있다.
2030년까지 남은 5년은 마지막 기회다. 전국 주요 거점 도시를 회복시키고, 교통·산업·교육·문화가 통합된 도시 전략을 실행해야 한다. 이 시기를 놓치면 어느 정권도 지방 붕괴를 막을 수 없을 것이다.

◆ 대선공약, 이제는 도시비전을 말해야
수십 년간 반복돼온 '부동산 정책 공약'은 이제 시대착오적이다. 명칭부터 바꿔야 한다. '국토·도시·주택 전략'을 어떻게 ‘부동산’이라는 단어 안에 수용할 수 있단 말인가. 개념과 영역이 엄연히 다르다. 새 정부가 들어서면 국토교통부를 비롯한 관련 부처는 도시와 국토의 미래설계부터 다시 꺼내야 한다.
사실 우리 정부는 그동안 매우 우수한 '도시 및 국토 전략'을 꾸준히 수립해왔다. 국토 균형발전계획, 국가 공간정보계획 등은 이미 체계적으로 잘 짜여 있다. 문제는 이를 국민에게 제대로 설명하고 공감시키지 못했고, 제대로 실행하지도 못했다는 점이다. 아파트 공급과 집값 대응에 매몰된 정치 환경이 거대한 국토 운영 로드맵을 거의 실행 불능으로 만들었다.
도시정책은 이제 단일 부처 과제가 아니다. 기획재정부, 교육부, 산업부 등 모든 부처가 연계하는 종합 전략으로 격상돼야 한다. 주택과 도시가 따로 갈 수 없다. 삶터와 일터, 교육과 교통, 문화와 에너지가 연결된 ‘K-도시전략’이 곧 대한민국의 미래설계가 돼야 한다.
‘K-도시부흥운동’. 중요한 건 명칭이 아니라 내용이다. 선언이 아니라 실행이 필요하다. 지금까지 그려왔던 계획을 다시 꺼내고, 손질하고, 바로 작동시켜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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