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아파트 주거지역 전경(사진=하우징포스트 DB)
[편집자 주] 지난해 12월 3일, 윤석열 대통령의 느닷없는 비상계엄 선포를 계기로 정치권은 혼란의 중심에 섰다. 국회의 계엄 해제 결의와 헌법재판소의 탄핵 인용이 잇따르며, 정국은 단숨에 조기 대선 국면으로 전환됐다.
탄핵 정국이 대선 정국으로 바뀌자, 여야는 각종 정책 공약을 앞다퉈 발표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부동산 공약은 핵심 의제로 부상하고 있다. 그러나 공급 수치 경쟁, 수도권 신도시 조성, 재건축·재개발, 공공임대 확대, 보유세 조정 등 익숙한 공약이 되풀이되고 있다. 말은 달라졌지만, 공약은 변하지 않았다. 지겹도록 한결같다. 도시와 주택정책을 여전히 ‘부동산 정책’이라는 단어 하나로 환원하고 있다. 도시와 국토를 어떻게 설계하고 운영할 것인지에 대한 철학과 비전은 공약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는다.
세계 10위권 선진국인 대한민국에서 도시·주택 공약이 이래서는 안 된다. 1970년대부터 반복돼온 동어반복형 공약은 이제 과감히 걷어내야 한다. 『K-도시주택 대혁신 대선공약 제언 시리즈』는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특히 도시와 주거 문제를 단순한 주택 공급으로 해결하려는 관행에서 벗어나, 철학과 비전, 문화와 제도를 중심에 둔 ‘국가전략형 도시정책’으로 끌어올릴 담론을 제안하는 것이 이번 시리즈의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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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대는 바뀌었는데, 공약은 그대로
AI, 디지털트윈, 스마트시티, 메타버스 기술이 도시 공간을 실질적으로 변화시키고 있다. 세종시 5-1생활권 스마트시티는 자율주행과 에너지 자립형 도시를 실험 중이며, 부산 에코델타시티는 환경 기반 스마트 인프라 적용 사례로 평가받는다. 서울시는 디지털 트윈 기술을 활용해 재난 예측과 교통 시뮬레이션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정치권의 주택 공약은 여전히 ‘전국 아파트 수십만 가구 공급’이라는 낡은 구호에 머물러 있다. 시대는 달라졌지만, 공약의 언어는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다.
◆ ‘아파트 공급 공약’...수십년간, 왜 반복되나
우리나라 주택정책 공약은 1970년대 이후 공급물량 중심의 수치 공약이 반복돼왔다. “100만 가구 공급”, “수도권 30만 가구 신도시”, “공공임대 100만 호” 등 기계적 문구가 여야를 가리지 않고 등장했다. 도시정책과 주거정책은 분리됐고, 공약은 계량화된 수치로 단순화됐다. 선거철마다 ‘몇 채를 지을 것인가’만 반복됐고, 도시의 미래나 주거 품질, 문화에 대한 고민은 배제됐다.
정치권은 산업화 이후 급증한 주택 수요, 공급 속도 부족, 수도권 중심의 가격 상승, 내 집 마련에 대한 불안 등을 활용, 아파트 개발 공약 프레임을 고정시켰다. 도시.도시 정책의 본질을 고민하지않고도 유권자 표를 수월하게 모을 수 있었기때문이다. 이후 정치권은 집값 안정과 공급 확대에만 몰두해왔고, 국토.도시.주거정책에 대한 철학적 접근은 아예 포기했다. 이로인해 국민 역시 도시,주거 개념을 깊이 고민할 기회를 갖지 못했다. 그 결과 정치권의 부동산정책은 ‘주택 공급’이 공약의 전부처럼 굳어버렸다.
◆ 이젠 공약의 프레임 바꿔야한다
조기 대선이 진행되는 2025년 5월 현재, 대한민국 주택시장은 예전과는 차원이 달려져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 2023년 기준 전국 주택보급률은 106.5%에 이른다. 과거 수십년간 지속돼온 극심한 주택부족 상황이 해소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의미다.
인구는 감소세에 들어섰고, 1인 가구와 고령자 가구가 급증하고 있다. 이 때문에 지금은 단순한 공급보다 주거복지, 도시 품질, 지역 균형발전이 핵심 과제가 된 것이다. 그러나 정치권은 여전히 수치 중심의 공급 논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금은 도시와 주거의 구조를 새롭게 짜야 할 시점이다.
◆ ‘도시·주택’을 ‘부동산’으로 퉁치면 안된다.
용어 정립부터 시급히 나서야한다. 지난 수십년간 도시와 주택을 ‘부동산’으로 묻어버린 바람에 건축·도시계획·공공성·주거복지 등의 핵심 가치들이 사라졌다. 주택은 삶의 그릇이 아닌 '자산'으로 인식됐고, 도시는 '시세지도'로 전락했다. 전통건축의 상징인 한옥은 전체 주택의 0.1%에도 못 미친다. 산업화와 무계획 개발 속에서 도시의 정체성은 희미해졌고, 도시에 대한 감수성도 함께 사라졌다.
정치는 ‘집값’만 이야기했고, 시민은 ‘도시에서의 삶’을 논할 기회를 잃었다. 이제는 도시와 주택을 보는 시각을 되돌려야 한다. 제도와 시스템을 갖춘 위에서 공급을 말해야 하며, 주택의 품질·디자인을 도시라는 맥락과 함께 논의해야 한다. 단순한 물량 경쟁이 아니라, 도시의 품격과 국민의 삶을 담는 공간 설계로 나아가야 할 때다.
◆ ‘도시와 주거 정책’을 말하라
대선 공약에서 정치권은 이제 '부동산 정책'이 아닌 ‘21세기형 K-도시·주택 정책’을 공약으로 걸어야한다. 수십만 가구 공급이라는 구호는 이제 역사 속으로 보내야 한다. 먼저 도시계획의 철학과 프레임을 정립하고, 그 안에서 수요를 산정하고 공급 방식을 설계해야 한다. 철학 없이 양만 외치는 공약은 설득력을 잃는다.
속도와 물량보다 중요한 것은 방향과 기준이다. 도시와 주택, 주거복지의 미래를 설계하는 공약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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