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부동산신탁사들이 건설 경기 침체와 금융 환경 악화로 지난해 4분기 4,055억 원의 대규모 적자를 기록했다. 특히 책임준공형 관리형 토지신탁(책준형 신탁)의 부실이 현실화되면서, 금융계열 신탁사들이 직격탄을 맞았다. 건설사 부도에 따른 신탁사의 손실 부담이 가중되면서 업계의 구조적 문제가 드러났다는 분석이다. 부동산 시장 침체 속에서 신탁업계의 실적 양극화도 더욱 심화되고 있다.

◆책준형 신탁 부실 현실화
17일 한국기업평가(한기평) 및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부동산신탁사 14곳의 지난해 4분기 합산 순손실이 4,055억 원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주요 부동산 신탁사 13곳의 연간 영업손실 규모는 5,157억 원에 이른다. 이는 14년 만의 적자 전환이다.
책준형 신탁의 구조적 리스크가 주요 원인으로 지목된다. 책준형 신탁은 신탁사가 건설사의 신용 리스크를 떠안는 구조다. 과거 부동산 호황기에는 높은 수익을 안겨줬지만, 건설 경기 침체와 일부 건설사의 부도로 인해 신탁사의 재무 부담이 급격히 증가했다.
실제로 KB부동산신탁은 평택 물류센터 시공을 맡았던 새천년종합건설이 부도 처리되면서, 대주단으로부터 104억 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당했다. 신탁사가 건설사의 준공 책임까지 부담하는 구조적 한계가 현실로 드러난 것이다.

국내 부동산신탁사들이 건설 경기 침체와 금융 환경 악화로 지난해 4분기 4,055억 원의 대규모 적자를 기록했다.사진은 한 건설현장.(하우징포스트 DB)

◆업체별 실적, 적자와 흑자 뚜렷한 대조
업체별 실적을 살펴보면 한국자산신탁, 대한토지신탁, 하나자산신탁, 신영부동산신탁 등 4곳은 흑자를 기록하며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실적을 유지했다.
반면 신한자산신탁, 무궁화신탁, 교보자산신탁, KB부동산신탁, 대신자산신탁, 코리아신탁, 우리자산신탁, 코람코자산신탁, 한국투자부동산신탁, 한국토지신탁 등 10곳은 순손실을 기록했다.
특히 교보자산신탁(-3,120억 원), 신한자산신탁(-2,504억 원), KB부동산신탁(-1,068억 원), 대신자산신탁(-209억 원)의 적자 규모가 컸다. 무궁화신탁은 2023년 164억 원의 흑자를 냈으나, 지난해 760억 원의 영업손실을 내며 적자 전환됐다.
한편 대한토지신탁, 코람코자산신탁, 한국토지신탁 등 일부 비금융계 신탁사들은 비교적 선방하며 영업이익을 유지했다. 우리자산신탁은 2023년 448억 원에서 지난해 69억 원으로 실적이 감소했고, 하나자산신탁도 1,064억 원에서 787억 원으로 27% 줄어드는 등 전반적인 실적 둔화가 이어졌다.

◆부채비율 상승,"신탁업계 재무 부담 가중"
한기평은 4분기 대규모 적자의 주요 원인으로 '신탁계정 대여금 충당금 적립'을 지목했다. 지난해 4분기 신탁계정 대여금 관련 충당금 적립 규모는 3,387억 원에 달했고, 이에 따른 영업적자가 3,102억 원 발생했다.
신탁계정이란 신탁사가 투자자로부터 받은 자금을 특정 프로젝트나 자산 운용을 위해 별도로 관리하는 회계 항목이다. 신탁계정에서 대여한 자금이 부실화될 경우, 신탁사는 이를 대비해 충당금을 적립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대규모 손실이 발생한 것이다.
2023년 12월 말 기준, 부동산신탁사의 신탁계정 대여금 규모는 7조 7,000억 원으로 자기자본 대비 131.7% 수준까지 상승했다. 차입부채 규모도 3조 7,000억 원으로 전 분기 대비 5,000억 원 증가했으며, 부채비율은 80.9%로 전 분기의 69.3% 대비 급등했다.

◆신탁업계 ‘생존 전략’ 시급
한기평은 "고금리, 공사비 상승, 분양시장 위축, 주택시장 양극화 등으로 부동산 경기 회복이 지연되고 있다"며"수익 창출력이 약화된 가운데, 신탁사별 영업 네트워크와 수주 능력, 자본 여력에 따라 실적 차이가 더 커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한 "신탁계정대 대출 증가와 자산건전성 저하로 인해 대손비용 부담이 커지고 있으며, 차입 조달 증가로 부채비율이 상승하는 등 신탁업계 전반의 재무 건전성이 악화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에 따라 각 신탁사의 신용도에 미치는 영향을 면밀히 검토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신탁업계 양극화 가속,"정부 대응책 필요"
금융업계 전문가들은 "부동산신탁업계는 시장 침체와 금융 환경 변화 속에서 재무 건전성을 유지하기 위한 대응책 마련이 시급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정부는 신탁사의 연쇄 부실을 막기 위해 책임준공 계약의 유연화를 추진하고 있다. 태풍·홍수 등 기상 변화로 인한 공사 지연을 인정하고, 위반 기간에 따른 금융비용 부담을 차등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그러나 신탁업계에서는 "현행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 원리금 전액 인수 조건은 과도하다"며, 보다 현실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업계에서는 고위험 구조를 완화하고, 신탁사별 리스크 관리 체계를 정비하는 것이 시급하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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